[민족사를 바꾼 무인들] 칼로 역사를 만든 영웅 33인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軍部)가 집권하면서 우리 사회는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그런데 면면히 내려오는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은 문(文)이나 무(武) 가운데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을 최고의 지도자로 생각했었다.

고려시대의 최고 명장으로 불리는 최영, 강감찬, 서희, 윤관 등 4대 장군 가운데 무관 출신인 최영 장군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문관 출신들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자출신 작가인 황원갑씨(59)가 펴낸 ‘민족사를 바꾼 무인들’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바람직한 지도자의 상(像)을 제시한다. 이 책은 고구려 건국 초기 제국의 기틀을 닦은 부분노부터 구한말 항일의병운동에 나선 평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 등장한 무인 33인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다시 맞은 오늘날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모으고 역사를 통해 국난 극복의 교훈을 얻고자 이 책을 저술했다”고 밝힌다.

그는 이어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무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문무가 균형을 이루고 상하가 일치단결해야만 그 나라의 장래가 밝다. 그 조화와 균형이 깨어지면 나라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고 강조한다.

‘…무인들’에는 온달, 을지문덕, 김유신, 연개소문, 계백, 장보고, 서희, 강감찬, 윤관, 최영, 김종서, 권율,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임경업, 전봉준 장군 등 유명한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갖는 미덕은 그동안 교과서나 사료에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던 무인들의 일대기를 철저한 사료조사를 통해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고구려 초기에 대제국의 기틀을 다진 부분노와 명림답부, 천년제국 신라의 도약기를 이끈 석우로와 김이사부, 화랑도의 대부였던 김문노, 백제의 유장으로 당나라에서 무위를 떨친 흑치상지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명장 고선지, 당나라에 전광석화 같은 기습공격을 가한 발해원정군 사령관 장문휴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고구려사를 빛낸 최후의 영웅 연개소문은 고구려인의 손으로 기록된 역사가 모두 사라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임금과 대신들을 마구 죽이고 국정을 전횡한 포악한 독재자로만 알려져왔다.

그런데 사실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연개소문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최강국이었고, 연개소문은 당태종 이세민이 지배하던 당시 전 중국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나라가 망한 뒤에도 오래도록 연개소문에 대한 공포심은 중국인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근래 중국이 국가적 사업으로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탈취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사태와 관련, “사태가 이토록 비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 모두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역사교육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라고 일갈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구려가 멸망한 것도 당나라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연개소문의 아들들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책에는 무장의 승전사와 함께 무인다운 충절을 보인 대목들도 자주 나온다. 고려 성립기의 무장 신숭겸은 후백제군이 공격해 들어와 왕건의 목숨이 위태롭자 왕건과 옷을 바꿔 입고 항전에 나섰다. 결국 왕건은 살아남았지만 신숭겸은 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용장이자 충신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민족의 앞날은 어둡다.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나라의 장래는 험난할 뿐이다.”

(파이낸셜뉴스 / 노정용 기자 200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