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문화로 학계 술렁

북한유산이냐 중국유산이냐
유네스코 지정 한달만 남아

한국 역사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고구려 때문이다.

정확히 한달 뒤인 6월28일부터 중국 쑤줘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여기서 북한과 중국이 각각 등재를 신청한 고구려 고분 및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지가 결정된다. 관심의 핵심은 ‘고구려’가 중국과 북한, 어느쪽 유산으로 등재되느냐 하는 것. 한국 유네스코 관계자는 “북한·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동시에 등재될 수도 있고, 둘 가운데 어느 한쪽만 등재될 수도 있다”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결론이 무엇이건 이번 결정은 한·중 역사분쟁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 ‘이후’를 내다보는 긴 안목이 절실한 것이다.

때맞춰 28일부터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열리는 제47회 전국역사학대회는 공동주제를 ‘세계화시대의 역사분쟁’으로 잡았다. 그 가운데서도 한·중 역사분쟁이 학술대회의 첫머리에 올랐다. 최근 발간된 <창작과 비평> 여름호도 한·중 역사분쟁에 대한 논단을 실었고,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백산학회’ 역시 고구려사 편입을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의 주요 논문을 번역해 <고구려는 중국사인가>(백산자료원)라는 책을 최근 발간했다.

이영호 교수 “공존을 지향”
뜨겁게 달아올랐던 1년전의 ‘고구려 신드롬’과는 달리 학계의 최근 술렁임에는 냉정과 지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부추겼던 ‘국수주의적’ 접근보다, 지금까지 고구려사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역사분쟁을 ‘평화적·발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성찰적 제안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고구려의 역사와 동북아의 현실’이란 글을 실은 이영호 교수(인하대)는 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의 조선족 사회 진출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지향하는 중국을 긴장시켰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토 회복’을 외치며 고구려·발해 유적에 대한 대대적 답사까지 이뤄지는 상황은 “정치목적으로 여러 여론을 선전해 우리에게 하나의 도전을 형성했다”(왕 뤄린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는 중국 쪽 인식을 부추겼다. 고구려 문제를 “민족사의 영역으로 ‘탈환’해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라는 게 이 교수의 비판이다.


한·중 역사분쟁의 극복을 ‘민족’개념의 폐기에서 찾는 ‘탈민족주의론’은 또다른 편향이다. 이 교수는 “중국 변경의 끝자락에서 어렵게 국가형태를 유지해온 소수민족 역사의 실체화가 바로 우리 역사”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동북공정이 영토에 대한 욕망을 은폐하면서 그것을 위한 역사적 명분을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가차없는 비판을 가해야 한다”면서도 “역사가 공헌해야할 현실은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기환 교수“공유 모색해야”
전국 역사학대회 공동주제 발표에 나선 임기환 교수(한신대)는 ‘동북아시아사에 대한 한·중간 역사인식의 차이’라는 논문에서 “한·중 양국은 ‘현재의 기획의도’에 대해 서로를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며 “중국은 한국의 ‘고토회복’ 의식을 경계하고, 한국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우려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그런 차이를 충돌이 아니라 화해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역사인식의 전환 또는 역사의 공유 가능성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며 “그 작업의 하나가 고대 동북아시아사의 복원”이라고 제안했다.

(한겨레신문 200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