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화중화주의, 오만과 편견

중국이 과열된 경제를 진정시키고 긴축경제를 펴겠다는 발표 이후 한국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땅에서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조선 후반기까지 중국 왕조들의 크고 작은 간섭을 받아 왔는데, 그러다가 해방이 되면서 빈 자리를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신하는 듯하였다. 이후 세상이 바뀌어 한중 국교가 수립되자 중국은 어느새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 수출국이 되었고, 21세기에 이르러 두 나라가 가장 밀접한 경제교역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몇 천년을 살아서인지 두 나라의 문화 역시 공통점이 많은데, 이를 두고 일방적인 중국문화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는 그 시원(始原)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계승 발전해오고 있는가를 통해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단오절 행사인 강릉단오제를 2005년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인 인류구전 및 문화유산 걸작으로 등록하려고 하자 중국 정부와 언론이 일제히 이의를 달고 나섰다고 한다. 단오절의 원류는 중국이기 때문에 이를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은 문화약탈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단오절 풍속은 어떠한 모습일까? 강에 용선(龍船)을 띄워 경주를 하고, 집에서 “쭝즈”라는 찹쌀떡을 먹는 유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단오절이 초나라 시인 굴원의 원혼을 기리는 풍속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도, 지금 두 나라 단오절의 문화적 컨텐츠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현재 유네스코에는 한국의 종묘제례악과 판소리가 등록되었고 중국도 전통연극인 곤곡(崑曲)과 전통악기연주인 고금(古琴) 연주가 등록되어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종묘제례악이 지정되었을 때도 이 음악이 중국의 고대 의식음악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반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억지를 부리자면 한이 없을 듯하다. 한국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고대 변방사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려고 하는 억지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 믿는 중화주의를 내세워 우월성을 강조해 왔다. 심지어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탈로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아큐(阿Q)식 정신 승리법”으로 이를 무시한 것은 또 다른 중화주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우월주의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홍보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은 곤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전 곤극제를 개최하여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앞으로는 북경의 전통연극인 경극(京劇)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행사를 계획할 예정이다. 한국 역시 강릉단오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이같은 방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세 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독특한 지역문화권을 형성하고 교류해 왔다. 특히 한국의 세시명절은 음력에 근거한 만큼 중국의 그것과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세시풍속의 내용은 독특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사회문화적 역할 역시 차이가 있다. 단오절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해도 한국의 독특한 전통문화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 단오제를 중국의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화 중화주의의 횡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뿐이다.

나아가 중국이라는 나라가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한국을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를 통해 바라보는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세계일보 2004-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