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사 논쟁’ 계간지 잇달아 찬반론 게재… 후속논의 활발

이번 주 출간되는 주요 계간지 여름호들이 앞 다퉈 올해 초 김한규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제기한 ‘요동사’ 후속 논의를 실었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를 한국사나 중국사가 아니라 요동이라는 제3의 공동체의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요동사’의 파격적 주장이 파문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2월 출간된 저서 ‘요동사’(문학과지성사)에서 요동에 동호(東胡), 숙신(肅愼), 예맥(濊貊)이란 3개의 역사공동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중 고조선, 부여, 고구려를 건립한 공동체가 예맥이며, 요(遼)와 원(元)을 건국한 거란과 몽골은 동호계, 금(金)과 청(淸)을 건국한 여진은 숙신계로 분류했다. 김 교수는 이들이 중원(中原)으로 통칭되는 중국 본토는 물론 삼한(三韓)으로 대표되는 한국과도 구별되는 역사적 체험을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이런 주장은 민족사의 기원에 대한 기존 학설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한반도 지역의 독자적 역사성과 문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연상시킨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계간지에 실린 글들은 김 교수가 제기한 ‘요동사’ 주장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보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문학과 사회’에 기고한 송호정 교원대 교수(한국고대사)는 “우리 학계에 만연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극복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도 요동공동체가 종족별로 독자적 언어를 사용한 사실과 단일한 역사공동체로서의 자의식을 가졌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논의의 약점이라고 짚었다.

‘창작과 비평’에 글을 실은 이영호 인하대 교수(한국근대사)는 “한국사를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자는 주장은 옳지만 중국의 중화체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악몽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과연 중일 양국이 팽창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21세기 동아시아공동체로 나아갈지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당대비평’은 책 발간 이후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해온 김한규 교수와 서양사학자인 김기봉 교수(경기대)의 대담을 통해 논의를 좀더 심도 있게 짚었다.

김기봉 교수는 “역사가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3요소로 이뤄진다고 할 때 요동사에는 ‘요동’이라는 공간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김한규 교수는 이에 대해 “예맥계, 동호계, 숙신계가 번갈아가며 요동을 통일할 때마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며 “일례로 거란이 요동을 통일했을 때 다른 공동체들은 역사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는 종족의 생물학적 소멸이 아니라 거란과 융합해 ‘거란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한규 교수는 또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역사상으로 존재한 ‘중국’뿐만 아니라 몽골, 요동, 서역, 티베트, 대만 등 여러 역사공동체들을 통합한 국가”라며 자신의 작업은 오히려 “일원적인 중국사 체제를 분해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요동사’ 논의는 한국만큼 중국에서도 불편해하는 연구란 설명이다.

김기봉 교수는 다민족 역사공동체를 형성했던 여러 나라를 하나로 편입시킨 것이 근대적 국가였다는 점에서 ‘요동사’의 탈(脫)근대적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역사란 결국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할 때 한국과 중국이라는 실체를 떠난 ‘요동사’에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겨두었다.

(동아일보 2004-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