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석관묘, 약수터로 방치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유물이 쏟아져 나온 아차산 일대, 서울시 광진구에서 올라가는 아차산공원 초입(500m 가량)에는 편편한 돌로 만들어 놓은 사각 형태의 약수터가 하나 눈에 뜨인다. 약수터 옆에는 식수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안내판이 보이지만 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잦아들지 않는다.

▲ 석관묘로 추정되는 아차산공원 안 약수터. 해당 구청과 서울시는 석관묘라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용 헬기장과 체육시설 등으로 훼손되고 있는 아차산 보루(산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군사시설, 현대의 군 초소)로 올라가던 김성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이 약수터를 가리키며 "이건 청동기 내지 철기시대의 석관묘로 추정된다. 석관묘 앞부분을 잘라내고 시멘트로 입구를 막아 약수터로 사용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몇 차례에 걸쳐 남한에서 고구려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온 아차산 일대를 조사한 적이 있는 그는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한 지역주민이 '이게 뭔지 알아? 내가 오랫동안 이 동네에 살았는데 옛날에는 묘였어'라는 말에 약수터로 사용되는 이것이 '석관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구려 군사유적인 아차산 제1보루를 거쳐 제2보루와 제3보루 중간지점, 등산로와 인접해 있는 곳에 길에도 3m×2.7m 가량의 대형 석관묘가 존재한다.

석관묘의 덮개석은 이미 사라졌고 앞, 좌우측 벽면을 이루는 돌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석관묘를 나침반으로 측정해본 결과 정확히 남북방향에 일치하게 눕혀있었다. 이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별자리를 측정해 묘를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관묘를 측정하는 사이에도 등산객들은 쉼 없이 지나갔고 주말일 경우 줄을 잇는 상황에서 석관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김성한 간사는 "아차산성 내에서 가장 큰 석관묘다. 초기 철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거대하고 산중턱에 석관묘를 사용할 정도라면 당시 큰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남한 최대 고구려 유적지인 아차산 일대에는 석관묘가 산재해 있지만 훼손에 무방비 상태다. 위 사진은 아차산 제2보루와 제3보루 사에 등산로 길에 붙어 있는 최대 크기의 석관묘다. 이미 상판 등이 사라져 보호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렇듯 아차산 일대에는 학계에 보고된 석관묘만 30여 기가 있고 전문가들은 육안으로 150여 기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지만 문화재 지정은커녕 보호시설도 마련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훼손 위험성이 높다.

아차산은 행정구역상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를 구분하는 행정 경계선으로,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고구려 문화유산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이전에는 양 지자체로부터 외면당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광진구 문화체육과 서아무개씨에게 '아차산공원 내에 문화재가 있는 것을 아는가?'라고 묻자 "아차산에는 고구려 유적인 아차산성밖에 없다"고 말했고 아차산공원 내에 석관묘 훼손 실태를 말하자 "그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아차산 발굴조사를 위해 동행한 서울시 문화재과 관계자도 "아직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경기도 구리시 홍아무개 문화관광팀장은 "남아있는 석관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상당히 수가 많아 별도로 지정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훼손되거나 망가진 것 등 석관묘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안했다"며 "아직까지 특별한 관리대책은 없다"고 했다.

김성한 간사는 "아차산 일대에 산재한 석관묘 상당수가 이미 도굴을 당해 중요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등산로 바로 옆에 있어 시민들의 문화재 접근성이 좋다"며 "그런데도 시민들이 석관묘를 문화재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발굴 작업을 통해 우회로를 만들어 보호 조치하고 최소한 안내판이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석관묘가 길 옆에 있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도 관할 지자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서울시 26개구 중 문화유산지도를 가지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예산 문제로 힘과 역량이 부족한 문화재청도 나서야 하지만 관할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나서 업무협조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 2004-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