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계기로 역사를 바로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다. 1000년 전에 있었던 고려와 거란간의 전쟁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거란이 발해의 수도인 흘한성을 함락(926년)하고 발해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요동지역으로 진출(986년)해 압록강변에 3개 성을 수축하던 때 였다.(991년).

고려도 왕건이 건국(918년)과 동시에 평양성을 수축하고 청천강 일대를 장악(923년)했고 광종 때에는 청천강 이북 가주 박주 등에 성을 구축했다. 성종 때는 압록강 지역에 관성 설치를 시도(984년)하는 등 두 나라의 충돌은 일촉즉발 상태였다.

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은 자칭 80만대군(실제 5만~6만명으로 추정)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넘으로써 전쟁이 시작됐다. 소손녕은 봉산군(현 평북 구성시 기룡리) 일대에서 고려군 선봉장 윤서안을 사로잡고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에 고려는 중군사 서희가 이끄는 군을 투입해 거란군의 진출을 막음으로써 전선은 고착됐다.

이 상황에서 강화회담이 이루어졌고 회담의 핵심이 바로 고려와 거란 사이의 고구려 고토에 대한 영유권 문제였다.

거란의 소손녕은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 차지가 되었는데 너희가 침식했다"며 고구려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내세웠다.

이에 대한 서희의 논박은 통렬했다.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를 계승하였으니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고 했다. 만약 땅의 경계를 논한다면 상국(上國:거란)의 동경(요양부)도 모두 우리 영토 안에 있는 것이니 어찌 침식이라고 하는가."

회담 결과 고려는 강동 6주를 확보하게 됐고 이는 오늘날 국경선인 압록강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결국 고려와 거란간의 전쟁은 고려의 북진정책에 따른 고구려 고토 회복전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려ㆍ거란 전쟁이 일어난 지 1000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불거진 고구려사 논쟁을 보자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에 대한 소홀함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매일경제 2004-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