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우리땅, 역사적 근거 충분하다”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

시민단체 활빈단(단장 홍성식)이 한 일본 극우단체의 독도상륙 시도에 반발, 8월 중 일본 대마도까지 열기구를 타고가 ‘대마도=한국땅’이라는 선언을 하기로 한 가운데 국내 역사학자가 이 주장을 뒷받침 할 역사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원광대 나종우 교수(원광대 사학과·한일관계사)는 6일 KBS 라디오 시사 플러스에 출연해 “대마도는 삼국시대부터 임진왜란 전 까지 우리 땅 이었다는 사료가 광범위 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 땅이었다며 임란 전 까지 조선시대 때 변방에 파견하는 관리였던 경차관, 채찰사등이 대마도를 통치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세종원년(1419년) 대마도 정벌 때 근거로 삼은 것은 ‘대마도는 본래 우리땅’이라는 태종의 교유문이었다는 게 세종실록에 기록 돼 있다” 며 “일본의 역사 자료에도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13세기 일본의 사서 ‘진대’ 에 신라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을 비롯해 “1723년 대마도의 대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락’이라는 책에도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다는 대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또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일본 고사기에서 대마도를 지칭하는 진도(쓰시마)는 ‘한반도에 가는 배가 머무는 곳’,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향지도는 ‘한국의 섬’ 이란 뜻이라고 추가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마도는 언제부터 일본 땅에 편입 됐을까.

나 교수는 그 시점을 임진왜란으로 꼽았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이나 일본 모두에게 척박한 땅인 대마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조선에서는 대마도 주민에게 식량을 대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 곳 통치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이 임란 때 대마도를 한국 침략의 거점으로 이용하며 가치를 알아보고 자기네 영토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마도가 확실하게 일본 영토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950년대 초 라는게 정설.

나 교수에 따르면 임란 이후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 대마도 영토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싹튼 민족의식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18일 대마도 반환을 최초로 주장하게 만들었고 일본이 이에 즉각 반박하면서 대마도에 대한 양국의 관심이 본격화 됐다.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3년동안 학자들에게 ‘대마도 연구’를 집대성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 ‘대마도=일본땅’ 이라는 논리적 근거를 완성했다는 것.

나 교수는 “1965년 한일협정때는 다른 중대사안에 밀려 거론조차 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응하느라 한국정부는 대마도 문제는 거론조차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나 교수는 “일본은 시끄러울때 마다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한다면 감정적 대응밖에 안 된다. 하지만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우리땅이다(대마도~후쿠오카는 147km). 우리는 만주만 잃어 버린 게 아니라 대마도도 잃었다”며 “대마도는 언젠가는 되 찾아야 할 땅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부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