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영토’ 지키기도 국방이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한다는 이른바 ‘동북공정’에 온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 바로 몇달 전의 일이다. 학술세미나와 언론의 특집보도가 이어졌고, 정부도 3.1절에 맞춰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시켰다. 그것으로 고구려에 대한 관심은 우리들에게서 멀어져 버린 것일까.

남한에 있는 가장 중요한 고구려 유적으로 꼽히는 아차산 고구려 보루터 보존사업이 국방부의 비협조로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아차산 등 한강변에 자리잡은 고구려의 보루들은 고구려가 만주 등 중국영토 뿐 아니라 한반도 깊숙히 터를 잡고 있었으며, 우리 역사의 핵심 줄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15개의 보루 중 유일하게 발굴조사가 이뤄진 아차산 제4보루에선 고구려의 건물터, 온돌, 토기, 철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자료인 셈이다. 정부의 고구려연구재단에 한발 앞서 창립된 민간 주도의 고구려역사문화재단은 그래서 아차산 일대에 고구려역사박물관과 고구려역사공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사적 지정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아차산 4보루, 용마산 5보루, 망우산 1보루 터 위에 군사용 헬기착륙장이 설치되어 있고, 그것을 철거해 달라는 서울시의 요청에 국방부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의 보존·관리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라를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는 국방부 쪽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국방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헬기착륙장 몇 개를 옮긴다고 해서 국방에 구멍이 뚫리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국방도 하고, 문화재도 보존하는 길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크게 보면 역사의 영토를 지키는 일 또한 국방이 아니겠는가. 아차산 고구려 유적 보존사업이 국방부의 협조와 지원 속에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겨레신문 200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