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현② 남소·목저성

한서 지리지에 설명된 고구려현 자리에서 남소수(소자하)를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신빈(新賓), 영릉(永陵), 무치(木奇)가 나오고 나중에는 혼하와 만난다. 혼하와 남소수가 만나는 곳이 요령성 무순현 장당향 고려영자촌(高麗營子村)이다. 이곳에 원수림(元帥林)과 철배산성(鐵背山城)이 있는데, 철배산성이 바로 남소성이다. 수나라가 고구려로 쳐들어 올 때 첫 싸움인 임유관 전투에서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이 첫 승리를 하였다. 원수림에는 진주 강(姜)씨 시조이기도 한 강이식 장군의 묘가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목저성(木底城)은 옛 표기로 ‘모디골/무디골’로, 무치에 있었으며, 뒤에 ‘무지/무치’로 바뀐 듯하다. 무치 서쪽에는 고구려 방어선(관문=모개) 세 곳이 있는데, 첫째·둘째·셋째 모개(一·二·三道關)라 부르며, 둘째·셋째 방어선 유적이 오늘날도 남아 있다고 한다. 선비족에 모용부(慕容部)가 있었는데, 남소수를 따라 난 길로 연나라를 세운 모용씨가 여러 번 고구려로 쳐들어 왔다.

무치 동쪽에 영릉이 있으며, 청태조 누르하치가 태어나고 금나라를 세운 허투알라(赫圖阿剌)라는 곳이 있었다. 만주어 사전인 〈한청문감〉을 보면, 청태조의 성은 ‘아이신교로’(愛新覺羅=황금겨레)다. 허투알라는 한자로 흥경(興京)이라 적었으며, 영릉은 누르하치의 무덤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혁명군 양세봉 사령관이 이끈 한-중 연합군이 신빈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신빈 서쪽 30리를 달아나는 일본군을 물리치고 그곳의 영릉가성(허투알라)을 차지하였다. 영릉(용링)에서 동남 방향으로 가면 환인(환런)에, 동쪽으로 가면 신빈 지나 통화에 이른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겨레신문 2004-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