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대외전략] <3>동북아에는 미국도 포함된다

'미국 없는 동북아'는 中 패권에 휘둘린다

21세기 한국의 대외전략을 설정하기 위해서 세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첫째는 21세기가 어떠한 시대가 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다. 이라크 사태가 말해주듯 폭력에 의존하는 제국주의적인 초강대국의 일방적 힘의 논리가 엄연히 국제질서를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의미가 있을 변화는 지역통합과 지방화 등 기존의 국민국가 틀을 깨는 움직임이다. 동북아나 아시아에서도 지역 통합 움직임이 지방의 자율성에 기초하여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외부 세계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자기 인식 및 국가상이 혼재하고 있다. 하나는 과거 만주 지방을 호령하던 고구려와 발해의 이미지에 따른 대국주의(大國主義)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 사대주의(事大主義)나 이기는 쪽에 줄을 섬으로써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담보하는 소국주의(小國主義)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제국 통일시대와 소국 분열시대가 반복 교차되어 왔다. 대국주의는 후자의 소산이고 소국주의는 통일시대에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그늘 아래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21세기가 제국 통일시대가 될지 분열시대가 될지 아직 속단키 어렵다. 미국의 힘이 쇠퇴한다고 바로 중국이 후계 제국의 자리를 이을 것이라고 전망할 근거는 아직 충분치 않다.

셋째 전략 구축의 시간 지평(time horizon) 설정이다. 향후 20년 이내를 생각하면 급격한 국제 역학 관계의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중시론자는 이 기간이 좀 더 길 것이라고 보는 반면 중국의 부상을 강조하는 논리는 중국의 추월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21세기 초반 제국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울 때 우리의 현실적인 전략은 21세기 새로운 큰 흐름인 지역주의(regionalism) 틀 속에서 제국과 비제국 그리고 소국을 같이 엮어내는 것이고 그 일을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다. 21세기 지역주의는 식민지 지배의 명분으로 이용되었던 과거 제국주의적 지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역내 각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초로 국가 권력의 이양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대국에 의한 힘의 전횡을 억제하는 내재 장치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지역주의를 이용할 것인가? 우선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 등 동북아 주요국을 동북아 내 다자주의(多者主義)적 지역 통합의 틀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본은 당분간 역내 경제의 자본 공급자 역할을 담당하고 러시아는 조만간 현실화될 에너지 및 자원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나라이다.

일부에서는 동북아에 왜 미국을 넣느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미국 없는 동북아는 결국 동북아를 중국의 패권에 맡기는 셈이 된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유럽의 경제적 통합은 미국 주도의 NATO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동북아도 미국의 기득권을 인정한 이후 경제와 문화면에서의 지역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최근의 한류(韓流) 현상은 우리가 노력하면 역내에 거부감이 적은 '열린 가치 창조국가'로서 역내 통합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박제훈 인천대 교수·한국동북아지식인연대 사무총장>

(조선일보 2004-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