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요동지역 토착 ‘곰집단’의 지도자
한국사의 1막 1장, 건국신화 이종욱 지음
“신화(神話)는 있었던 일이 아니요, 있어야 할 일이다. …신화는 이상(理想)이다.”(함석헌 ‘야인정신’ 중)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주몽·혁거세·수로는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처럼 실존을
증명할 수 없는 전설 속의 영웅들이었을 뿐일까?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화랑세기’를 진서(眞書)라고 주장하며 주류 역사학계의 ‘신화’ 통설에
맞서 온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신화는 역사다!”
지난달 25일 아침 신문을 펴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박혁거세의 신화가 깃든 경주 나정(蘿井)에서 기원 전후(前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 그렇다면 ‘삼국사기’ 서기 6년조에 적힌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는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가. 박혁거세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 이름을 역사 교과서에서 빼버린 것은 착오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삼국의 건립연대가 기원전 1세기라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들은 신빙성을 얻게 되지 않는가?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건국 연대를 그보다 1~2세기 더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중요한
근거는 바로 ‘신화’다.
이 책은 우선 우리의 신화를 천지창조나 죽음과 윤회 등을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신화(myth)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시조의 탄생부터 시작해 건국세력의 이주, 새로운 지역의 정착, 국가 형성, 건국 장소와 시기, 왕비세력 등의 줄거리가
담긴 건국담(legend)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주의 지위가 초월적인 것으로 되면서 점차 신화의 살이 붙었다는 것이다.
각국의 역대 왕들은 이 신화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건국신화는 각 왕국의 지배세력이 장악한 집단적 기억의 ‘1막
1장’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단군이 1500년 동안 고조선을 통치하고 수로가 150년 넘게 장수했다는 장구한 시간들은 어디까지나 신비감이
덧붙여진 ‘신화적 시간’일 뿐이다.
신화는 한국사의 거대한 틀을 이야기해준다. 고대의 국가들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무슨 얘길까?
부여의 동명(생소한 이름이지만 중국측 기록 ‘논형’에 등장하는 부여의 건국 시조다),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혁거세, 가야의 수로는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초기 국가의 건국세력들이 어디에선가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는 의미다. 저자는 장엄한 어조로 말한다.
“고조선지역에서 밀려난 동명 세력이 부여를 세웠고, 부여에서 도망한 주몽 세력이 고구려를, 그리고 고구려에서 떠난 온조 세력이 백제를 세웠으며,
어쩌면 고조선 또는 백제에서 나왔을지도 모르는 혁거세 세력이 신라를 세웠다.”
그럼 고조선과 단군은? 그의 해석은 도식적으로 보일 만큼 명쾌하다. 은(殷)나라가 망하고 랴오시(遼西)지역으로 온 유민세력이 ‘환웅
집단’, 이들보다 먼저 랴오둥(遼東)으로 이주해 정착한 은 유민이 ‘범 집단’, 원래 랴오둥의 토착세력이 ‘곰 집단’이었다. 곰 집단이 환웅
집단으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아 기원전 12세기쯤 ‘단군 집단’이 돼 고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시(神市)’는 은 유민이
거주한 지역이었을 것이고, ‘천부인’은 이보다 앞선 문물(예를 들어 청동기)의상징이었을 수 있다.
주몽의 신화는 이미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인들이 만들고 받아들였던 시간이다. 고구려의 건국세력이 북부여에서 이주한
세력임을 전하는 이 신화에서 소국을 형성하고 주변의 소국들을 흡수하는 장구한 이야기가 ‘삼국사기’에선 기원전 37년이라는 시점으로 압축된
것이다. 백제의 건국 이야기는 기록되기까지의 시간이 짧아 ‘신화’의 단계에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비류·온조 집단이 동시에 고구려에서 이주했음을
보여주며, 신라의 혁거세 신화에는 6촌장으로 상징되는 지배세력의 계통별 시조가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신화의 해체는 저자 자신의 초기 국가 형성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한국 고대의 국가가 ‘추장(酋長)
사회’ - ‘소국(小國)’ - ‘소국 연맹’ - ‘소국 병합’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여기서 바로 ‘추장 사회’의 모습이 건국신화 속에
들어 있다는 것. 그는 혁거세와 수로 신화에 나오는 ‘서라벌 6촌’ ‘가락 9촌’이 바로 이 단계라고 본다. 이 이론의 배후에는 엘만
서비스(Elman R Service)와 같은 미국 신진화주의 인류학자들의 국가 발전 단계설이 있다. ‘무리(band)’에서 ‘부족(tribe)’
‘치프덤(chiefdom)’ ‘국가(state)’로 발전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치프덤’ 단계를 ‘추장 사회’에 설정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공격 대상은 서기 3세기까지의 한국사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며 비워놓다시피 했던 기존 학설이다. 저자는 “그 통설은 이병도와
손진태로부터 비롯됐다”며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들의 ‘삼국사기 불신론’은 임나일본부설에 근거를
둔 일본 학자 스다 소키치(津田左右吉)의 시각에 그 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저자의 ‘신화 다시 읽기’는 “일제가 만든 학문적 굴레를
벗어버린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고대사의 수수께끼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fact)과 사실들 사이의 커다란 공백을 메우려 하다 보니 “이러한 추측이
타당하다면” “가능성이 있다”와 같은 말들이 빈번히 사용되는 것은 영성한 기록들의 한계 때문일 테니 논외로 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인용한 ‘고기(古記)’라는 책이 고구려의 역사서 ‘유기(留記)’보다 먼저 쓰인 기록이며 단군신화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지만, ‘고기’가 특정 책의 이름이 아니라 그저 ‘옛 기록’을 지칭한 것일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추측은
근거가 희박해지지 않을까? 혁거세신화에서 혁거세가 태어나기 전 6부 사람들이 ‘입방설도(立邦設都·나라와 도읍을 세움)’를 논의했다는 부분을
주목해 ‘입방’은 추장 사회를 통합해 소국을 만든 것이고 ‘설도’는 왕성을 세운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입방설도’가 혁거세 추대의 당위성을
높이기 위해 후대에 찬입된 상투적이고 막연한 어구에 불과하다면? 한국사의 범위를 밝혀주는 건국신화야말로 고조선·부여·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사이의 역사전쟁을 막을 수 있는 증거라면서도 ‘말갈인의 나라’라는 이유로 발해를 한국사에서 제외해버린 것도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부분이다.
(조선일보 200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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