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로 본 고구려인의 글쓰는 법

고구려 벽화의 서사 장면을 분석해 고구려인들이 글씨를 쓸 때 사용했던 용구와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고광의 원광대 강의교수는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이문기) 주최로 지난 17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눈문 발표회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서사 관련 내용 검토'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교수는 "고구려 붓의 실물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안악3호분.무용총.통구12호분.덕흥리 벽화고분.지안 사신총 벽화에 그 형태가 비교적 정확히 묘사돼 있다"면서 "붓의 기본 구조는 붓대와 필모로 돼 있으며, 종류도 붓대와 필모가 길고 짧은 것 혹은 두툼하고 가는 것 등이 다양하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안악3호분 서측실 서벽 묘주정사도(墓主政事圖)에 등장하는 '기실(記室)' 이 오른손에 들고 서 있는 붓은 붓대와 필모의 길이 비율이 5.5:1 정도이고, 붓대의 굵기는 필모의 반대편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

그는 평양 대성산성에서 발견된 금니불경을 통해 그 실체가 확인된 고구려 시대의 종이의 경우 "통구 12호분과 지안 오회분 4호묘 벽화에 회화용 종이 또는 서적이 묘사돼 있어, 그림과 글씨에 전문적으로 종이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교수는 "최근에 고구려 목간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간독의 사용은 안악3호분.무용총.덕흥리 벽화 고분.지안 사신총 등에서 볼 수 있어, 고구려 시대에는 서사에 종이나 비단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목간이나 목독이 여전히 폭넓게 사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고교수는 벽화에 나타난 특징적인 서사 모습들을 분석하며 "서서 쓰는 경우는 요즘이나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앉아서 쓰는 방법은 다소 생소한 모습들이었다"며 특히 "지안 사신총 벽화에서처럼 왼무릎을 세우고 오른무릎은 자연스럽게 앉아서, 간독을 쥔 채 왼손의 팔꿈치를 왼무릎 위에 가볍게 받치면 매우 편안하게 간독을 쓸 수 있다"면서 벽화의 정확성을 설명했다.

고교수는 또한 "고구려 벽화에는 당시 서사 관리들의 붓 사용과 관련된 특수한 습관이 반영돼 있다"며 "안악3호분과 무용총에 보이는 붓은 붓대가 점차 가늘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한대 서사 관리들이 관모를 쓴 머리에 붓을 꽂는 습관에 영향받은 것으로 당시의 서사 관리들은 붓을 머리에 꽂고 뭔가를 적을 필요가 있을 때에는 곧바로 붓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0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