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정치놀음 끝내야

<삼국사기>를 분석해 보면 삼국시대 후기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와는 달리 유교적 규범의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다.

무령왕(재위 501∼522)은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귀부(歸附)했다”했고, 법왕(재위 599)의 이름은 ‘효순(孝順)’이었다. 법왕의 손자인 의자왕(재위 641∼660)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에 우애(友愛)해서 동방의 증자(曾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증자는 효도로 이름난 공자의 제자다. 의자왕의 태자도 이름이 ‘효(孝)’였다.

우리 학계에는 당나라 침공군의 공격을 받아 부여가 함락될 때 “3천궁녀가 낙화암에서 투신 자결했다”는 사실을 들어 의자왕이 말년에 “음란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3천’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뜻을 지닌 표현일 뿐, 실제로 3천 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3천궁녀’는 백제가 그만큼 ‘강대한 나라’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백제에서 유난히 유교적 규범이 강조됐다는 사실은 왕권의 정당성이 윤리적으로 설명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까지도 왕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믿었던 고구려, 신라와는 판이한 정치·문화적 발전단계에 와있었던 것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인류문명이 “주술(呪術)로부터 윤리적 단계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왕이 천손이라는 믿음은 왕권의 정당성을 주술적으로 설명하는 원시적 정치문화를 청산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땅에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윤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공식화된 때로부터 적어도 1천5백여 년의 역사가 흐른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무너진 1천7백억 원짜리 폭로

김진흥특검팀이 이른바 대통령측근 비리의혹 수사 석달이 끝나 그 결과를 내놨다(3월31일).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불법정치자금 4억9천1백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했고, 노대통령의 고교선배 이영로씨가 7억4천여만 원을 받은 혐의는 대검에 수사기록을 넘겼다.

하지만 그 밖의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썬앤문그룹의 95억원짜리 감세청탁 의혹, 최도술 전 비서관의 3백억원 모금의혹, 홍준표 의원이 제기한 1천3백억 원의 하나은행 CD등이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95억원, 3백억원, 1천3백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의혹은 모래성처럼 무너졌지만, 의혹을 제기하고 노무현대통령을 날이면 날마다 난타했던 한나라당의 어느 누구도 이 부도덕한 ‘정치쇼’를 반성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액수만 1천6백95억원이고 보면, 면책특권을 악용한 정치적 모략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 때 제기한 옷로비의혹 이래 6년 동안 휘둘러온 스캔들폭로정치는 그렇게 끝났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거둬들인 천문학적인 액수의 불법 대통령선거자금이 들통나 위기에 직면했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감행한 대통령탄핵의 정치폭력으로 더욱 치명적인 위기를 자초했다.

유권자의 책임, 언론의 책임

대통령탄핵은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 폭로게임이 갈 수밖에 없는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대통령탄핵 찬성집회 사회자 송모씨의 저질 발언은 폭로에서 탄핵에까지 이른 저질 정치놀음의 밑바닥을 노출시킨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MBC는 지난달 26일 내보낸 송모씨의 발언이 “편집 방송된 것”이라는 비난이 일자 2일 다시 ‘촬영원본’을 내보냈다.

전후 맥락이 어떻게 이어지건 송모씨는 분명히 “고등학교도 안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습니까?”라는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모’란 왕조시대 왕비마마를 지칭한 것이다. 민주시대엔 있을 수 없는 말이다. 더구나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왕조시대에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궁극적으로 ‘도덕성’이었다. (3월3일자 ‘책임지지 않는 권력’ 제하의 본란참조).

조선왕조 선조(宣祖)대의 명필 석봉한호(石峯 韓護·1543∼1605)어머니의 전설 같은 얘기는 가난한 어머니 그늘에서 뛰어난 자식이 나온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학력비하’의 천박함은 절망적이다. 우리는 6년째 헌정 반세기사상 최악의 저질정치놀음에 절망하고 있다 .

이 정치적 난장판은 15일 총선에서 결단코 끝내야한다. 4년 전 저질 정치꾼들을 대거 국회에 보냈던 유권자의 책임이 무겁다. 언론의 책임은 그보다 더 막중하다.

(미디어오늘 2004-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