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국강병의 리더십

역사는 교훈을 준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역사의 교훈을 잘 잊어버리는 민족에게 발전은 없다. 따라서 그 나라의 앞날이 밝을 수도 없다.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숱한 국난을 당해온 까닭은 되풀이되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자업자득이었다. 그래서 국난의 역사는 언제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교훈을 일깨워준다.

통솔력이 민족사 진운 결정

민족사의 큰 물줄기는 한두 사람의 영도자가 아니라 백성들의 힘에 의해 연면히 흘러내려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는 왕후장상이나 영웅호걸들 만의 기록이 아니라는 이른바 민중사관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대는 인걸을 낳고 인걸은 시대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출중하고 탁월한 리더십에 의해 민중의 역량이 결집돼 민족사의 진운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출현해 만주와 한반도에 퍼져살던 수많은 부족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어찌 고조선의 건국이 있을 수 있었으랴.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는 비상한 영걸이 없었다면 어떻게 고조선 멸망 이후 열국(列國)으로 흩어진 민족을 하나의 큰 물줄기로 모아 뒷날 중국과 동북아의 패권을 다툰 대고구려가 성립될 수 있었겠는가.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 민족사상 최대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을 떨친 밑바탕에는 백성과 군사를 일치단결시킨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계백(階伯)이 5,000 결사대로 김유신(金庾信)의 5만 대군을 맞아 황산벌에서 초전에 4전4승할 수 있었던 것은 더불어 죽을 곳과 죽을 때를 선택하도록 이끈 비상한 리더십 때문이었다.

대조영(大祚榮)의 발해 건국도 고구려 유민의 비장한 염원을 한 줄기로 모은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보고(張保皐)가 제해권을 장악하고 청해진을 막강한 해상무역 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데도 군사와 선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이끈 탁월한 통솔력이 그 뒷받침이 되었다. 배중손(裴仲孫)이 피어린 항몽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삼별초 용사들로 하여금목숨을 바쳐 싸우도록 만든 비상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또한 임진왜란을 돌이켜보라. 육군이 연전연패할 때 이순신(李舜臣)의 수군 만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왜적을 여지없이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불세출의 전술전략과 더불어 탁월한 통솔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권율(權慄)의 행주대첩도, 김시민(金時敏)의 진주성대첩도 민ㆍ관ㆍ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비상한 지휘력에 힘입은 바 컸다. 뿐이랴. 관군들이 싸움다운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맥없이 무너질 때 곽재우(郭再祐)ㆍ김덕령(金德齡)ㆍ고경명(高敬命)ㆍ조헌(趙憲) 같은 의병장들이 몸을 일으켜 숱한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의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전봉준(全琫準)이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고 근대사의 격랑으로 역사의 무대를 휩쓸어간 것도,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강년(李康秊)ㆍ신돌석(申乭石)ㆍ홍범도(洪範圖)ㆍ김좌진(金佐鎭) 등이 용장(勇壯)한 독립투쟁을 벌일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비상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정치란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백성을 편하게 해주고 잘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정치를 한다면서 정작 국민의 삶을 간고하게 만들고, 피로를 가중시키고, 마침내 정치라면 환멸을 느끼게 만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에게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편안하고 잘살기 위해서는 나라가 안정돼야 한다. 나라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경제와 군사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바른 정치, 훌륭한 정치란 곧 경제력과 군사력의 신장을 뜻한다. 따라서 부국강병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훌륭한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국가 지도자 '살신성인' 필요

오늘날의 한국을 리더십 부재시대라고 한다. 동명성왕이나 박혁거세(朴赫居世), 왕건(王建)이나 이성계(李成桂) 같은 비상한 국가창업자, 세종대왕(世宗大王)이나 영조(英祖) 같은 국가경영에 탁월한 최고지도자도 나오지않을 뿐만 아니라 나라와 겨레를 위해 마음을 비운 황희(黃喜)와 맹사성(孟思誠) 같은 훌륭한 공복(公僕)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오늘날을 난국이라고 한다. 국난이라고도 한다. 또다시 민족사의 진운이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 모두가 리더십 부재가 불러온 자업자득이다. 시국이 이처럼 어지러운 까닭에, 또다시 난세를 당했기에 탁월한 지도력, 비상한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국가경영이나 정치ㆍ경제ㆍ안보 등 몇몇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ㆍ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분야에서 지도적 인사의 살신성인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더구나 말세 같은 난세를 맞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존경할 만한 사회적 스승도 없지 않은가.

(서울경제 200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