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동북아 항만전쟁을 직시하자..

동북아는 그야말로 격전장이다.

중국 경제가 급팽창하면서 세계 3대 교역권의 하나로 급성장하게 된 동북아 지역은 그만큼 국가들간의 경쟁도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쟁은 사실상 생존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 각 국은 그야말로 총력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시스템과 제도를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과 정보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일 것이다.

열정과 사명을 가지고 한 차원 높은 곳을 보며 전진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이러한 모든 것들이 움직여지고 빛을 발하게 된다.

"사람"이 중요함은 역사의 곳곳에서 보여진다.

장보고가 있었기에 해상왕국 신라가 가능했다.

강대하던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후 형제, 삼촌간의 분열로 멸망했다.

지난해 태풍 매미로 인해 부산항이 피해를 입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넘어지고 휘어져 나뒹구는 육중한 크레인은 그 자체가 바로 커다란 괴물처럼 처참한 광경이었다.

이를 치우는 것도 시급한 일이었으나 당장 부두에 대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배를 어찌할 것인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당시에는 다들 부산항이 제상태로 돌아오는데 아무리 후하게 쳐도 1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정말 부산항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역시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지난 3월30일 부산에서는 태풍 피해복구 완료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여 만이다.

외국인들도 깜짝 놀란 이 신속한 복구의 뒤에는 바로 "사람"이 있었다.

"항만 물류인"들이다.

크레인이 붕괴되자마자 항운노조와 하역사들은 어떻게든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뭉쳤다.

항운노조는 바로 24시간 근무체제를 선언하고 부산항의 정상화를 위해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역업체도 내 부두 네 부두를 가리지 않고 기다리는 배들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피해는 6개월여만에 완전 복구됐다.

바로 "사람"이 "어떻게" 일하느냐가 우리 항만을, 우리 물류를 지켜내는 관건이 었던 것이다.

어제 우리 항만의 주체인 항만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 항만에서는 어떠한 파업도 분규도 없이 신명나는 장(場)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의 "노.사. 정 항만 평화선언식"을 거행했다.

바로 항만에서 일을 하는 그 "사람"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일하여 갈 것인가를 결정한 중요한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입화물의 99.7%가 항만을 통해서 처리되고 있다.

항만이 마비될 경우 하루 1조7백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다.

지난 해 우리 항만이 처리한 4백60만TEU의 환적화물은 우리에게 5천9백억원 이라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 주었다.

이렇듯 중요한 항만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이끌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항만을 책임지고 있는 항만 노.사.정 모두가 우리 국민에 대해 지고있는 의무요 책임이다.

평화 선언은 바로 이러한 책임을 인식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약속이다.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항만은 연간 9%에 달하는 경제 성장으로부터 나오는 막대한 배후 물동량과 엄청난 시설 확충으로 우리 항만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일본과 대만 카오슝 항만도 화려했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항만비용 인하, 생산성 제고등 다양한 방안을 동원하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을 기치로 내건 우리로서는 이들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가 불가피해 보인다.

노사정 평화선언은 이러한 주변환경을 둘러볼 때 더욱 뜻깊다.

이는 전세계 선사,화주,잠재적 외국 투자자에게 우리 항만과 물류, 노사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 노사 화합과 상생의 분위기를 불어넣고 경제에도 활력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한 항운노조와 항만물류협회의 큰 결정은 한국 항만을 동북아 중심항만으로 일으켜 세우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화합과 협력의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항만 물류인들의 힘"이 동북아 물류중심 건설의 주춧돌이 될 것을 기대한다.

(張丞玗 /해양수산부 장관)

(한국경제 200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