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주의 부활을 경계하자

최근 중국이 자국 중심주의인 중화주의를 내걸고 역사를 왜곡하고 인근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외교 간섭에 나서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예로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활동했던 고구려나 발해는 당연히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규정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를 비롯해 중국 정부가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추진했던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슬로건을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바꾸도록 요구하거나, 한국이 2002년 월드컵 8강 진출 후 내걸었던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존심)에 야유를 퍼부었던 ‘추미(球迷:야구·축구 등의 구기광)’ 등을 들 수 있다. 55년 동안 공산당 통치로 사라졌거나 약해졌다고 믿어진 중국의 ‘중화(中華)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아카넷)는 오랫동안 한반도에 군림했던 중국중심주의(중화주의)를 근현대의 서구중심주의와 비교 검토한 책이다. 강 교수는 우리에게 중화주의가 단순히 학술적으로나 과거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잠재한 중화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중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부활하는 중화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중화주의는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발생국이었던 한족(漢族)이 자민족의 문화를 최고의 지위와 절대적 기준에 올려놓은 문명관이자 스스로를 주변 국가들과 구분하는 세계관이며, 국제질서관’인 일종의 팍스시니카(pax sinica·중원의 평화)라 할 수 있다. 문명(華)과 야만(夷)의 엄격한 구분을 위해 조공책과 기미책(羈靡策·소나 말처럼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의미로 소극적인 방어정책)을 병행했다. 즉 중화주의는 ▲세계의 중심이자 가장 우월한 문명으로 ▲한족이 누렸던 중화문물은 인류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표준이며 ▲야만세계는 중화문물을 수용 습득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강 교수는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착취를 수반한 정복 지향의 서구중심주의와 달리 중화주의는 일종의 도덕적· 문화적 지배로 주변 민족의 자치를 인정하는 등 평화 지향을 목적으로 했다”고 본다. 그는 중원을 정복한 원과 청이 중화주의에 반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편입된 까닭은 “한족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지배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한다. 중화주의가 중국의 대외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대내적인 통치수단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화주의는 오늘날 중국이 소수민족을 통합하는 데에도 유효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중화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의 중화주의 영향은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에서 나온 지나(支那) 대신 ‘중국’이라 부르는 것을 비롯해 중화사관에 따른 과거사 해석, 현대문화 등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해외 화교를 망라하며 ‘대중화주의’로 무장한 중국이라는 새로운 거인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강 교수는 “서구중심주의나 중화주의 등 복수 문명들이 상호 경쟁·협력하는 21세기에 우리는 더욱더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한국적 정체성’의 확립이 요구된다”고 결론짓는다.

(세계일보 20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