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황후된 中'장락공주' 고구려사 존재 역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4월 26~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북한 등 6개국 학자 20여명이 참가했다.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학자 쑨진지는 이에 반발하는 한국의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불참한 채 논문만 보냈다.

쑨신지가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인의 3분의 2가 중국으로 유입됐으며 고구려가 역사상 중국에 예속됐다”는 주장을 펴자 러시아에서 한국학의 대부로 통하는 미하일 박(한국명 박준호) 모스크바대 공훈교수가 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즉 “현재의 시각에서 중국땅이지만 당시 고구려인에게는 그곳이 고구려 땅이었다”며 “수와 당이 고구려를 공격한 것은 중국 본위로 규정한 천자 중심의 중국체제에 고구려가 돌궐 말갈과 같은 민족을 통합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때를 맞춰 작가 김중걸씨가 고구려 영류태왕의 황후가 된 당나라 공주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소설 ‘장락공주’(문학과의식)를 펴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임을 주장한다. 이 소설의 모티프는 중국 ‘자치통감’이다. 사료에 따르면 당나라 황제 이세민은 장락을 결혼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명을 내린다. 그가 장락 공주를 고구려 왕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세민은 천자가 되기 위해 부친을 죽이고 그 죄과를 씻기 위해 고구려 정벌이라는 대업을 서두른다. 이때 고구려 영류태왕에게서 황후로 이세민의 딸을 달라는 서신을 받는다. 이세민은 분노했지만 처남의 설득으로 장락 공주를 고구려에 보내면서 은밀한 황명을 내린다. 영류태왕을 살해한 연개소문에 의해 행궁으로 유폐된 장락 공주는 황태자 스님 그리고 양만춘을 차례차례 유혹한다. 고구려 왕의 죽음을 둘러싼 장락 공주의 행보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진행돼 소설적 흥미를 배가한다.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중화사상은 오늘날 중국 당국의 저변에 깔려 있는 위험한 팽창주의로 그 모습을 바꿨다. 한 작가가 소설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입증시키려는 작은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반면 국내는 탄핵과 선거 열풍에 휘몰리고 있다. 작가로서는 고구려마저 중국에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을 것이다.

(스포츠서울 20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