卵生神話와 고구려

백마가 하늘에서 내려와 경주 나정(蘿井) 가에 낳아놓은 자색 알에서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태어났다. 그 난생신화의 현장에서 신당 규모의 주추 자리들을 발굴함으로써 역사의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에 대해 실타래를 풀 단초가 될 것 같다.

건국신화에서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문화권은 신라뿐이 아니다. 가야의 김수로왕도 황금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의 주몽도 햇볕을 받고 밴 알에서 태어난 난생 임금이다. 곧 난생은 한국의 동질성이며, ‘한국=난생’이라는 역사등식이 형성된 것이다.

건국신화의 난생문화권은 대만·미얀마·필리핀·베트남·피지와 파라오로 알려진 이집트 및 수마트라·보르네오 등 남방국가나 민족들로, 고구려는 난생신화문화권의 북한(北限) 한계에 속했을 뿐 중국과는 이질문화권이다. 곧 고구려를 한국사에서 약탈해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면 이 고구려 신화에서 알을 훔쳐가든지 중국건국신화에 알을 슬쩍 갖다 놓든지 해야 할 판이다. 그런 시각에서 난생신화의 유적 발견은 시의 적절하고 뜻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난생성지에 묘당을 세운 시기는 박혁거세의 아들이자 신라 2대 왕인 남해왕 3년으로 시조묘(始祖廟)에 기록돼 있다. 그 후 임금들은 춘 2월에 시조묘에 가 제사를 지냈고 시조묘에 일어난 상서로운 일, 이를테면 신작(神雀)이 내려와 거닐고 나뭇가지가 꼬이는 연리지(連理枝) 현상이 일어난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이번에 발굴된 작은 규모의 주추는 이 초기 시조묘의 유적일 것이다. 그 후 21대 소지왕 9년 시조 탄생지인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지었다 했는데, 나을은 나울(蘿井)로 시조묘를 확대해 신궁으로 개명한 것으로, 시조묘 유적 밖의 여덟 주추 구멍의 큰 규모 유적이 신궁터임이 틀림없다.

중국의 천자(天子)가 천명을 받든 현장인 천단(天壇)이 팔각(八角)이듯이, 신궁을 팔각으로 지었다는 것은 중국의 지배구조에 구애받지 않는 횡적 평등 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곧 난생유적 발굴은 희귀한 신화 유적이라는 것 이외에도 역사해석에 긴요한 열쇠를 던져준 것이 되는 셈이다.

(조선일보/이규태 20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