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예산 '0'…고구려 재단 하긴 할건가

법인등기비도 못대 정부지원 근거없어
연구원 한 명 없이 임시 사무실서 지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일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예산도 확보하지 못하고 한 명의 연구원도 없이 임시 사무실에서 지내며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14일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 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고구려연구재단에 연간 100억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예산의 집행은 물론 규모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또 6개 팀의 연구 인력 38명과 행정지원·연구지원 인력 12명 등 모두 50명을 정원으로 했지만 현재 이사장만 정해졌을 뿐 나머지 인력은 언제 채워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공간 확보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시설 투자를 최소화한다”며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안에 재단 사무실을 두려고 했지만, 학계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독립 법인이라는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구려연구재단은 현재 서울 삼청동 교원징계재심위원회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있는 형편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이 이처럼 표류하자, 정부가 “고구려사 왜곡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3·1절에 맞춰 재단을 출범시키는 데만 급급했을 뿐 정작 중요한 후속 작업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또 재단에 참여하는 학계 인사들도 상황만 지켜볼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가적 지원에 의해 중국의 고대사 왜곡 중장기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동북아 역사를 종합적으로 연구·홍보해 정(政)·학(學)·민(民)·관(官)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고구려연구재단 출범 당시 계획이 무색할 지경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9일 “지금까지 결정된 예산은 아무것도 없으며 시설과 인건비 등 당장 필요한 부분을 기획예산처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4월 중에 국무회의에서 결정이 날 것이므로, 본격적인 재단 활동은 5월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인으로서의 ‘실체’도 갖추지 못한 고구려연구재단에 정부 돈이 지원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재단법인의 등기를 위해서는 3억원의 출연이 필요한데 이 비용의 확보가 늦어져 아직까지 등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고대사 연구자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이 재정적인 문제로 제 임무를 못하는 것은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중국은 막대한 예산을 통해 교과서 개정에까지 손을 대고 있는 만큼 질질 끌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 2004-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