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 ‘국제 학술대회’] “中 정사에도 조선역사로 기록”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치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하러 갔을 때 고장왕의 총신 선도해에게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구려와 신라,가야는 다같이 한겨레의 나라였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적 공통성이 강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왜곡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최광식·한규철)가 26∼2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북한측이 처음으로 자국의 입장을 정리한 학술논문을 보내와 관심을 끌고 있다.

논문은 북한 사회과학연구원 역사연구소의 조희승 박사가 보내온 ‘고구려는 조선의 자주적인 주권국가’. 그는 “중국 정사의 하나인 ‘송사’는 고구려를 조선력사에 속하는 나라로 서술해 놓았고 고려 역시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써놓았다”며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게 되니 억지와 모순,마찰이 생기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고구려,백제,신라가 한 겨레로서 문화적 공통성이 강했다고 전제, 언어적 유사성에 대한 견해를 내놓았다. “고구려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조선말이었다. 당시의 조선사람들은 여러나라로 갈라져 살았던 만큼 방언이 심하였으나 세 나라 사람들은 호상 자주 래왕하고 교류를 하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는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고구려어가 따로 있고 백제어 신라어 가야어가 따로 있은 것이 아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대회에 급작스레 불참을 통보해온 쑨진지(孫進己) 선양(瀋陽) 동아중심 연구주임은 미리 보내온 발표문에서 “중국에서 고구려사는 중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역사라는 관점이 주류”라며 “현재 중국이 옛 고구려 땅의 2/3,북한이 1/3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양국이 고구려를 공동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고구려가 어느 민족에게 기원했는지, 어느 나라의 영토에 건립했는지, 혹은 고구려의 영토와 국민이 이후에 누구에게 속했는지 등의 문제는 고구려 이전이나 멸망 이후의 귀속으로 고구려가 존재했던 시기의 귀속을 설명할 수 없다”며 고구려가 존재할 당시 “중국 중앙 정부로부터 고구려왕이라는 책봉을 받는 동시에, 중국의 중앙과 지방 관리인 정동대장군·평주자사(征東大將軍·平州刺史) 등과 같은 책봉을 받은 것은 고구려가 역사상 중국에 예속됐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한국학의 대부 미하일 박은 ‘한국사에 있어서의 고구려의 위치’라는 발표문을 통해 “요즘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 동북 역사상 소수민족의 정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빠진 문제 하나는 중국 동북 지역을 언제나 중국 영토였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한민족 조상들도 한반도와 인근 중국 동북지역에서 수천년 동안 거주하던 토착 민족 대열에 들어가 있었으며 이는 중국 사서에서도 동이(東夷)한 통칭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700년의 고구려 역사는 다음 한국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한민족 자주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민족의 불굴의 대명사로 코리아라는 명칭이 계속 남아 있고, 앞으로의 통일을 위한 정신적 역량으로도 된다”고 덧붙였다.

유네스코 조사위원으로 지난 2000년과 2001년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하고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실무자로서 참여하고 있는 아리안 페랭(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은 “현재 북한에는 벽화의 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관찰 방법, 벽화의 보존을 위한 적절한 절차의 연구 또는 실행 프로그램이 없다”며 “올해안에 무덤 벽화의 악화를 막기 위해 보존과학실이나 북한 문화보존기구 같은 하부조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6개국 20여명의 학자들이 참석했다.

(국민일보 2004-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