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속의 만주]시리즈를 마치며 / 좌담

경향신문이 신년기획으로 마련해 3개월 동안 진행해온 역사 시리즈 ‘한국사 속의 만주’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동북공정’을 계기로 만주로 불리는 중국 동북3성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점검하고자 한 이 시리즈는 만주 지역의 역사와 삶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리즈를 마치며 전문가 좌담을 통해 동북공정의 성격·진행과정, 한·중 역사전쟁이 남긴 과제와 영향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안병우=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언론에서 열심히 보도를 하고 학계에서도 내용파악에 주력해 이제는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그 내용과 성격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기환=이제 동북공정은 유행어가 될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에서 역사문화를 이해하고자 추진한 프로젝트인데, 동북지역 개발과 연관돼 있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문제는 동북공정의 목표가 동북3성 지역이 역사·문화적으로 중국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프로젝트라 할 수 있지요. 내부 과제에 고구려사 등 고대사와 관련된 주제가 포함돼 있어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송호정=중국의 의도는 동북지방 역사를 정리하면서 멀리는 남북한의 통일에 대비하자는 작업으로 이해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우방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우리는 동북공정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동북공정의 성격을 파악해 잘 대응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봐야지요.

▲안=어쨌든 동북공정은 우리 사회에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중국의 행위를 규탄하고, 언론에서는 연일 보도하고, 학회의 움직임도 어느 때보다 활발했지요. 고대사 열풍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송=고대사에 대한 관심은 대개 10년 간격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대개는 재야사학자를 중심으로 제기되는데 이번에는 중국에서 촉발돼 외교문제로 비화했다는 게 다릅니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역사학계가 발빠르게 대응에 나선 데다 시민, 언론도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역사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고대사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소수 학자들의 대응으로 그친 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동아시아 속에서 동북지방의 역사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데도 동양사 연구자들이 논의에서 빠진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요.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에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끼어들면서 감상적·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임=고대사 열풍, 그중에서도 고구려사의 관심이 특히 컸지요. 이는 고구려가 갖는 일반적·대중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고대사에 대한 환기가 역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역사를 빼앗겼다’ ‘고구려사를 되찾자’는 식의 감정적 인식에 머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역사를 지키려면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역사인식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안=그래도 가장 큰 성과는 재단 설립이 아닐까요. 동북공정이 알려지면서 고대사를 연구할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예상보다 진행이 빨라 지난 3월1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사진 구성 등 출범까지는 빠르게 진행됐는데 아직 본격적인 활동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임=재단 설립과정에서 성격, 연구영역, 운영방식 등을 놓고 여러 의견이 제기됐는데, 차차 수렴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고구려뿐 아니라 동아시아사의 연구 중심이 돼야 할 것이고, 당연히 자료센터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고 의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송=문제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을 분과의 중심에 놓고, 어떤 내용을 연구하느냐가 관건이지요. 장기적으로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이라는 이름이 연구영역의 폭을 좁힌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고구려·발해·고조선을 포괄한 명칭이 반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동북공정에는 여러 의도와 목적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고구려사 귀속문제가 가장 절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역사귀속 문제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칠 위험성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우려했지요. 특히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진행되면서 중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패권경쟁을 벌일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높았고, 그 속에서 한국의 위상 등이 관심사였습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고대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어떤 나라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게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민족과 국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해체는 이상적일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가 역사적 실체인 데다 현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대사를 한 국가에 귀속시키는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이런 점에서 고구려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고구려사를 당연히 한국사로 보는데, 중국은 자기의 역사로 보고, 또 일본과 한국 학계의 일각에서는 동아시아사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여러 종족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룬 통합국가라는 성격 때문이지요. 실제 고구려는 문화적으로도 다원화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민족사를 넘어 폭넓는 시각에서 볼 때 고구려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족과 무관한 다른 역사로 취급할 수 없지요. 고구려는 분명 우리 역사의 한 줄기를 이루고, 이후의 역사가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이번에 고조선에서 발해까지 한국고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북공정과 관련해 먼저 큰 틀 속에서 한국고대사를 자리매김하고, 그 속에서 고구려·발해를 이해한다면 이번 같은 혼란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동아시아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일반 시민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시민들의 역사에 대한 애정은 굉장히 크지만 표출방법, 역사인식은 학계와 거리가 있습니다. 시민들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때로는 학계의 우려를 갖게 할 정도입니다. 학계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역사교육의 강화를 열심히 주장하는 만큼 학계는 그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고민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현재 중·고교에서의 한국사 교육이 많이 약화돼 있고, 국사와 세계사가 분리돼 학습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된 역사인식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고구려사를 한국사 틀 속에만 바라보게 되지요. 한국사를 세계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통합해서 가르치는 게 필요합니다.

▲송=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세계사를 가르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통합도 중요하다지만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게 더 시급합니다. 먼저 초·중·고부터 역사를 독립시켜 가르치고 수업시간도 더 늘려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에는 사회교육을 통해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하는데 강연, 방송, 출판 등을 통한 역사교육이 활성화돼야 할 것입니다.

얘기를 바꿔 북한은 우리의 열기에 비해 큰 반발이나 비판 등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 학계는 북한과의 공동대응을 기대하고 정부에서도 비공식적이나마 이런 의사를 전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남북역사학자 학술대회 참석차 지난 2월말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이때 북한의 영향력 있는 학자를 만났는데, 북한도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남북이 공동대응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상당히 거북해하는 반응이었습니다.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26~27일 열리는 심포지엄에도 북한학자 4명을 초청했으나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실상 남북 공동대응은 어렵고, 북한이 자체적으로 대응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임=북한학계는 고조선-고구려-발해에서 역사정통성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연구성과의 80%를 고구려사가 차지할 만큼 고구려의 비중은 막대합니다. 그런데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중국의 관계 때문으로 보입니다. 남북 공동대응은 어렵더라도 다음달 민족화해협력위원회 주관으로 서울에서 고구려 유물전시회가 열리는데, 이같은 전시 등을 통해 남북한 교류가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송=예전에 비해 남북교류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연구, 학술교류 통로가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창구가 돼 남북 학술교류의 물꼬를 트면 좋겠습니다.

▲안=그런 점에서 지난 2월 남북역사학자 대회에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구성한 것은 커다란 성과입니다. 분단 후 처음 구성된 남북공동학술기구가 아닌가 합니다. 1년에 2월, 8월 두차례 학술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는데 오는 8월에는 러·일전쟁과 일본 우경화가 주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차 이곳에서 고구려 문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향신문 2004-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