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군 vs 청군’…美·中,21세기 우리의 선택?

중국의 동북공정,주한미군 재배치,일본 자위대의 재무장….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는 하나의 흐름이 발견된다. 바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쟁탈전이다.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의 저자이기도 한 국제 문제 전문가 이장훈씨의 ‘홍군vs청군’은 냉전 이후 유일 강대국이 된 미국과 13억 인구를 등에 업고 질주하는 중국 사이의 힘겨루기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저자의 질문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과연 ‘신 냉전시대’를 불러올 것인가, 21세기 우리의 우방은 과연 누구인가.

◇중국의 질주, 긴장하는 미국 = 소련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9·11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악의 축’은 초토화됐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최절정에 다다른 21세기, 중국은 매년 10%씩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2년 대미 수출에서 10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고 1980년대 일본 경제의 20분의 1에 불과하던 경제 규모는 이제 4분의 1 수준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일본을, 2041년이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 갑작스런 중국 경제의 성장은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와 ‘브래지어 전쟁’ 같은 미·중 무역 분쟁을 야기했다.

중화주의를 바탕에 깐 중국군의 현대화 사업과 우주 개발도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사된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 우주군(軍) 창설 계획, 기생위성으로 불리는 대인공위성 시스템 개발 등 우주 전쟁에 대한 중국의 준비가 알려지면서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 내 대중국 강경파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90년대 중반 메릴랜드 교외의 한 별장에서 국가 안보 전문가 8명으로 결성된 미국의 블루팀(blueteam)은 ‘안티 차이나’의 대표적 흐름. 현재 40여명이 CIA(중앙정보국), NSA(국가안보국) 등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대 중국 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다. 청군은 블루팀을, 홍군은 인민해방군을 가리킨다.

◇남아시아의 대결구도 = 21세기 양국의 격전지는 대만해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중국’을 수용했던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대만안보강화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등 최근 강경기류로 선회하고 있다. 대만해협은 미국에게는 군사적 요충지. 인접한 태평양 심해를 통해 미국 서부 연안까지 잠수함을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물선, 유조선 등이 수시로 드나드는 대만해협을 중국이 통제할 경우 미·일 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필리핀,베트남,싱가포르 등과 군사 협력을 강화한 데 이어 맹방 호주와 긴밀히 손을 잡았으며 중국의 경쟁자 인도를 끌어안았다. 일본의 재무장도 미국의 부추김 속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심지어 네오콘의 대표 논객 찰스 크로서머는 “우리의 악몽은 북한 핵이지만 중국의 악몽은 일본 핵이다. 악몽을 공유할 때가 됐다”며 일본의 핵무장을 촉구했다. 이에대해 중국은 동남아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화교를 내세워 경제적 세 과시로 응수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쟁탈전 = 중앙아시아를 선점한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자유무역 지대 창설과 현대판 실크로드 건설 계획 등으로 중앙 아시아 국가들을 설득해 카자흐스탄 유전과 송유관 건설권 등을 따냈다. 2001년에는 러시아,카자흐스탄,기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상하이협력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발빠른 움직임은 9·11 이후 대테러전쟁으로 주춤한 상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승리로 카스피해의 풍부한 유전 자원에 접근할 교두보를 마련한데 이어 이라크까지 점령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 후에도 미국은 경제원조를 조건으로 우즈베키스탄 등 3국의 군사기지를 임대했고, 카스피해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도 눈 앞에 두고 있다.

◇우리의 선택 = 미국은 최근 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는 등 주한미군을 지역군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활동 반경을 넓혀 대만해협까지 방어하겠다는 전략. 고구려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통일 이후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북아 질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통일 한국이 출현할 경우 조선족 사회가 한반도에 흡수될 것을 우려한 중국이 역사 정비를 통해 흔들리는 동북지역 이탈을 막아보려는 것. 통일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전재된 만큼 동북공정 역시 넓게는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의 한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한반도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갈수록 고조돼 간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저자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도, 대중국 양자 동맹도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다리 걸치기’ 전략 역시 분쟁의 상황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저자는 “10년 뒤 우리는 중국과 미국 가운데 누구 편에 설 것인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미,친미의 이분법과 동북공정에 대한 감정적 대응을 넘어설 때 진정한 용미(用美),용중(用中)의 전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이장훈·삼인·1만3000원).

(국민일보 2004-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