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역사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나라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한·중 역사전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 고대사 빼앗기'를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발해사에 이어 고구려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이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팽창적 민족주의와 불간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언론까지 가세한 이 한·중 역사전쟁의 전체를 조망하면서, 그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월간 중앙>이 한·중 관련 전문가들의 다양한 한 목소리를 엮어 펴낸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월간중앙 역사탐험 엮음,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간)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중앙일보 문화부 조우석 기자가 서평을 보내왔다. 편집자.
  
한·중 역사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한·중·일은 서세동점 이래의 '상처 입은 모더니티' 때문에 인접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사 정복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관망과 별도로 오늘의 현실은 너무 화급하다. 역사는 오늘의 현실이다. 관망 혹은 개탄에 그칠 수만도 없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건진 행운의 하나가 국제정치학자 이동주 선생이라는 시야 넓은 학자를 뵐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1980년대 말 그가 대우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할 당시였는데, 그의 애제자인 당시 노재봉 서울대 교수가 스승의 뒤를 늘상 따라다녔던 기억도 난다. 어쨌거나 현대와 전통을 넘나들고, 동아시아와 세계를 오가는 그의 시야는 전공의 벽에 갇혀 사는 학자들에게는 귀감일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국제질서를 해석하는 틀도 흥미로웠다. 흔히 조선 사회가 중국에 조공(朝貢)했던 것을 두고 오늘의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것은 오류일 수 있다. 요즘 '근대국가의 틀'이라는 안경을 낀 채 동아시아의 옛 국제질서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동주 선생은 지금도 음미할 만한 탁견을 이렇게 제시한 바 있다.
  
즉, 근대 이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국제 네트워크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 보편국가 내지 세계국가의 틀로 규정된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근대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요즘과 다르다. 서양 중세가 비잔틴 역사의 '오이쿠메네'라는 관념 아래 보편질서를 구축했듯 우리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그 국제질서를 지금의 잣대를 들이대 중심 대 주변의 구도 혹은 주종 관계로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동주 선생 아이디어의 윤곽이다. 그 국제질서에 '천하사상'이라는 '문패'를 붙여볼 만하다는 제안도 했다. 그런 문제의식 아래 꽤 오래 전에 나온 연구서가 <중국의 천하사상>(민음사, 1988)이다. 전해종·김충열 교수 등 학계의 주요 저자들을 동원해 묵직한 읽을거리를 내놓았던 것이다. 이미 타계한 이동주 선생을 불현듯 떠올린 것은 중앙일보 시사미디어에서 내놓은 반가운 책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때문이다.
  
책에 실린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이론가로 꼽히는 손진기 선양(瀋陽)동아연구센터 주임의 기고 '고구려 영토의 3분의 2를 중국이 계승했다'는 주장도 지금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역사전쟁의 와중에 중국측의 속마음을 가늠하는 자료로 일단 훌륭했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유자민 옌볜(延邊)대 교수의 "고구려는 중화 천하질서의 일부'라는 글. 제목 위에 고딕체로 '중국의 황당한 고구려 사관'이라고 표시해 놓았지만, 정말이지 많이 당혹스러웠다. 짜증스러웠다고 해야 옳다.
  
근대 이전의 보편질서를 '내 논에 물대기'식으로 해석하고, 그 배면에는 자국중심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바로 만국지중심, 천하지중심을 뜻한다. 한마디로 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의미다."(89쪽) 이 대목에서 간취되는 중국의 태도란 전형적인 대국주의의 발로다. 옛 보편국가의 틀을 왜곡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동주 선생이 봤다면 영 불쾌하다고 여겼으리라.
  
이토록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는 대표성을 가진 국내 학자들의 글을 망라한 것은 물론 중국측 자료도 함께 수록해 독자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점이 우선 돋보인다. 신문과 방송에서 왕왕거리고 있지만,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한·중 역사전쟁의 전말을 체계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이면서도 시종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책의 구성은 입체적이다. '중국은 왜 고구려를 빼앗으려고 하나'(제1장), '동북공정의 정체를 벗긴다'(제2장)에서 '유네스코의 선택-한국이냐 중국이냐'(제7장)에 이르기까지 짜임새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매끄럽게 교통정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7장 '고구려를 보는 또 다른 시각'도 흥미롭다. 고구려 지키기에 나선 네티즌을 포함한 국민적 관심을 합당하게 담아내면서도, 담백하고 성숙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 이 대목이다.
  
즉, 동북공정을 보는 시각이 극단적 민족주의로 흐를 경우에 대비해 우리의 시야를 크게 넓혀 주는 것이 김병호 문화탐험가의 '고구려인은 북방이 아닌 남방에서 왔다'와, 김기봉 경기대 교수의 글 '매트릭스 사관에서 탈피, 동아시아로 보자'다. 어제 오늘의 역사전쟁을 동아시아 역사 공동체의 모색으로 전환하자는 김교수의 제안은 매우 유연했고 가슴에 와 닿았다. 이동주 선생이 흡족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을 법하다.
  
"우리는 유럽공동체라는 프로그램으로 탈 민족적 역사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는 오늘의 유럽인들에게 역사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유럽 각국의 역사학은 민족주의에서 탈피해 유럽사의 맥락에서 자국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중·일은 과거에서처럼 동아시아를 자기 것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21세기에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로 나가야 한다."(262∼263쪽)
  
상식이지만 현재의 한·중·일은 서세동점 이래 당해온 역사적 트라우마(악몽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처 입은 모더니티' 때문에 바로 지금 인접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역사 정복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가 현 단계 동시아의 한계다. 문제는 그런 관망과 별도로 오늘의 현실이 너무 화급하다는 점이다. 문병호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의 말대로 역사는 오늘의 현실이다. 관망 혹은 개탄에 그칠 수만도 없다.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의 곳곳에서 지적되듯 중국이 자기쪽 사료마저 부정하는 모순을 무릅쓰고 동북공정에 뛰어든 것은 오랜 족보를 가진다. 1960년대 이후 조·중 사이만 해도 서로 껄끄러운 상태에서 '잠정 잠복'시켜온 사안이 이번에 노골적으로 도진 것이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좌담(제8장)에서 이번 역사전쟁을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라고 규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한·중 역사전쟁에 뜨거우면서도 슬기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를 권한다.

(프레시안 20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