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유적 복원 나선 중국…발해史 어디로

작년 지은 民家, 벽지 안바르고 돼지우리도 비어
2800억 들여 수도 상경 용천부 옛모습 살려

중국 정부가 다음달부터 20억위안(약 2800억원)을 들여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발해진(渤海鎭)과 지린(吉林)성 둔화(敦化)시 일대의 옛 발해 유적들에 대한 본격적인 복원·정비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고구려 유적 정비를 마무리하고, 발해 역시 ‘당(唐)의 지방정권’이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다음 순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비사업’은 상경(上京) 용천부(龍泉府)라는 고대 도시 하나를 그대로 복원하는 방대한 프로젝트다. 예산도 지안의 고구려 유적 정비에 투입된 10억위안의 두 배나 된다. 최근 대구과학대 오한택 교수팀이 기획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발해진을 답사한 강위원(姜衛遠) 경일대 교수와 오한택(吳漢澤) 대구과학대 교수는 “지금 발해진 일대는 아무리 작은 시골이라도 외국인이 들어오면 촌장이 상부에 신고하도록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작년에 지어진 민가도 벽지를 바르지 않고 돼지우리도 비어놓는 등 곧 있을 이주에 대비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정부의 발해 유적 복원 방침에 대해 국내 학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무엇보다 고증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궁성 복원 모델을 15세기 명나라 때 건축물인 자금성과 천안문을 염두에 두고 있어, 이보다 시간으로 6~7세기가 앞서고 지역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인 발해의 역사 문화를 왜곡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송기호(宋基豪) 서울대 교수는 “그간 중국이 발해 유적 중 상경성 궁성 일부를 복원한 것을 보면 학술적으로 엄밀한 고증을 거치지 않고 이뤄진 점이 많다”며 무엇보다 정확한 고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길수(徐吉洙) 고구려연구회장은 “중국이 발해 유적 복원에 나선 것은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일”이라며 “하지만 자국 학자들의 방대한 연구 결과와 정부 예산을 들여 본격적인 정비에 나선 만큼 우리가 참여할 길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신형식(申瀅植) 백산학회 회장은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학문적인 연구 역량을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발해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중국 옌볜 박물관 발해 안내판은 “당나라 시기 발해국은 속말(粟末) 말갈족을 주제로 하여 우리나라(중국) 동북 지구에 세워진 지방 봉건정권이다”라고 쓰고 있다. 1979년 중국의 고등교육 문과 교재로 출간된 ‘중국사강요(中國史綱要)’의 ‘수·당’편에선 발해를 ‘변강 각국’의 하나로 소개하면서 “발해를 세운 대조영은 속말 말갈인의 후예”라며 중국사의 일부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작 발해를 보는 우리 학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현행 고교 국사 교과서에는 발해를 고구려인·말갈인의 연합국가로, ‘통일신라’와 ‘발해’를 ‘남북국(南北國)’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발해를 한국사의 지류(支流)로 간주해 왔다.

이에 대해 한규철(韓圭哲) 경성대 교수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고 대외적으로 ‘고려’라고 자칭했던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자주국으로 봐야 하는데도, 오히려 우리 스스로 한국사에서 소외시켜 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된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의 6개 팀 중 ‘발해사 연구팀’이 편제돼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가진 않은 상태다.

(조선일보 200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