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학 고금

18세에 당나라에 유학, 반역자 황소(黃巢)를 규탄하는 격문을 비롯해 중국사에 남는 명문장을 남긴 최치원(崔致遠), 중국 도교에서 굴지의 신선으로 기억되는 김가기(金可紀), 지장보살로 중국 민중 깊숙이 좌정하고 있는 김교각(金喬覺)이 신라 유학생들이었다면 중국사람들 깜짝깜짝 놀란다.

‘당회요(唐會要)’에 보면 당태종이 태학(太學)에 가 고구려 백제 신라 유학생의 폭증을 보고 학사(學舍) 1200칸을 증축시켰다는 것이며, 통일신라시대인 당 문종 때에는 신라 유학생 216명 몫의 양식과 옷감을 내리고 있다. 신라 신무왕 국상(國喪)에는 105명의 유학생들에게 문상 방학을 허락하는 것 등으로 미루어 신라 유학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한다.

삼국시대 스님들의 꿈은 불교 성지인 중국 오대산에 유학하고 불교 발상지인 천축국을 순례하는 일이었다. 선종(禪宗)의 고승(高僧) 계보인 전등록(傳燈錄)의 14대까지의 계보를 보면 신라승으로 표시된 유학승이 무려 54명에 이르고 있다.

이 수는 이 계보에 오른 총 고승의 45%로 과반을 차지하는 신라의 맹렬 유학파워를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주 중국 유학담당기구는 중국에 유학한 175개국 학생의 45.5%가 한국학생으로 압도적 으뜸이라는 발표가 있었는데, 당나라 때 유학붐의 부활을 보는 것만 같다.

각계 각층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미래의 중국, 그 자락에 참여하려는 한국 젊은이들의 진취적 기상을 그에서 엿볼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이 지금은 애오라지 누리고 있는 비교우위에 안주, 안이하게 기득권을 얻으려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에 간 조선 지식인들의 통폐를 오망론(五妄論)으로 경계했는데 오늘에도 새삼스러운 교훈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재력이나 학식을 과시하는 것이 일망이요, 우리나라와 다른 문물이나 풍속을 비웃는 것이 이망이며, 사대(事大)요소에 굽실거리면서 오랑캐 요소에 거만한 것이 삼망이다.

한문을 좀 안다 하여 상대편을 얕보는 것이 사망이고, 추구하는 실리주의를 경망하다고 고고한 체하는 것이 오망이다.

(조선일보 200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