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를 되찾자]간도는 조선 의도가 담긴 지명?

중국에서는 간도라는 지명은 조선과 일본에서 의도를 가지고 만든 명칭이라고 보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연길이라고 한다. 따라서 간도의 유래도 창작설 내지는 날조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 생각하는 간도의 유래는 첫째, 1903년 간도 관리사로 파견됐던 이범윤이 만들었다는 설이다. 길림 지역 연길, 화룡현 일대에 조선인이 월경하면서 그 지역을 간토(墾土)라고 했는데 1881년 조선인들이 함경도 종성 북쪽 두만강의 섬을 개간한 후 간도(間島)라고 했다. 간도와 간토는 발음이 비슷해 점차 간도로 불리게 됐다. 이범윤은 가강(假江)-강통(江通)이라 부르던 것을 간도라고 보고했다. 중국에서는 이 지방을 연길(延吉)이라고 하는데 연기 같 은 것이 항상 끼어 있다 해서 연집강이라고 불리다가 연길로 변한 것으로 봤다.

둘째, 일본인 날조설이다. 이 지역은 자연조건-지형-지리-정치변화로 인해 일찍이 간도(墾島)-강동(江東)-간동(干東)-북간도(北間島)-간도성(間島省) 등으로 불렸다.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두만강 대안 지역과 그 북쪽을 간도라 부르면서 간도 명칭이 공식화됐다고 이해했다.

셋째, 조선인 창작설이다. 대만 중앙연구원의 장촌우(張存武)는, 1877년 지방관이 종성과 온성 사이 두만강 가운데 땅을 개간토록 허용해 간도라 불렀는데, 후에 종성-회령-무산-온성 4읍의 백성들이 간도 이북지역으로 개간해 나가면서 그 부근 지역을 전부 간도라 불렀다고 했다. 이는 조선인이 해란강(海蘭河) 혹은 포이합도하(布爾哈圖河)를 토문강 혹은 분계강으로 이해해 간도설이 나왔으나 이것은 단지 전설에 속할 뿐이라고 했다.

중국인들 일본인 날조설 주장도

그러나 한국에서 이해하는 간도는 중국에서 이해하는 것보다 역사적인 의미가 훨씬 크다. 한국에서는 간도를 '墾島' '艮土' '閑土' '間島' 등으로 불렀다. 간도라는 명칭은 1388년 명조가 동북 지방을 평정한 후 동만주 지방에 눌간도사를 설치해 그 산하에 여러 위(衛)를 두고 다스린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지만 대체로 다음 설이 유력하다.

첫째, 언어학적으로 신주(神州) 또는 신향(神鄕)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감터에서 연유한다. 고구려 수도였던 환도(丸都)도 이런 뜻과 관련이 깊다. 둘째, 조선 태조의 고조부 목조가 원으로부터 벼슬을 받아 다스리던 두만강 북쪽지역 알동(斡東)에서 간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셋째, 1885년감계사 이중하의 보고에 의하면, 간도 또는 간토라는 것은 샛섬 또는 샛땅이라는 뜻으로 두만강 중간에 있는 섬을 그렇게 불렀으나 온성-경원-경흥 대안지역도 간도라 불러 이 지역 전체를 간도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넷째, 간도 또는 간토라는 말은 개간한 땅이라는 뜻으로 써왔고 간도(艮島)라는 말은 축인(丑寅) 방향에 있는 땅, 즉 동북지방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섯째, 조선사람 손으로 개간했기 때문에 간도(墾島)라 하며 또 한국 영토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고 해서 간토(艮土)-곤토(坤土)라고 표현했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중국 근현대사〉

(뉴스메이커 20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