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풍선경제’ 터질라…묻지마 투자, 은행 부실화

한 중국 여성이 2001년 중국공상은행에서 20만위안(약 3000만원)을 빌려 오빠가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사는 데 보태줬다. 오빠가 이를 상환하지 않아 이 여성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런데도 이 여성은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중국의 한 토지개발사업자는 은행 대출에 필요한 허가증 4개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대출을 받았다. 최근 300만달러(약 35억원)를 은행에서 빌려 설비를 늘린 한 철강회사는 공장을 더 확장하기 위해 700만달러의 추가 대출을 기다리는 중이다. 은행은 ‘눈 감고’ 돈을 빌려 주고 개인과 기업은 마구잡이로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행태가 중국에 만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대출 심사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묻지 마’ 대출 행진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중국의 개인 신용대출은 1885억달러(약 222조원)로 2000년의 4.5배 수준이다.

문제는 상환 능력에 대한 평가 없이 대출이 이뤄진다는 점. 자동차 담보 대출과 학자금 대출 등의 미상환율이 30%를 웃도는 지역도 있다. 이미 부실채권을 4000억달러(약 471조원)나 안고 있는 중국 은행들의 부실이 더 커질 우려가 크다.

2000년 세워진 ‘상하이 신용정보 서비스’는 중국 주요 도시 은행들의 전산망을 연결해 고객 신용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은행 이용자의 정보가 미미하며 그나마 자동차나 모기지론을 받은 사람의 정보에 한정돼있다. 중국에는 은행끼리 신용정보를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법률이 없다. 한 은행에서 신용불량자가 돼도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기업 대출도 마찬가지. 지난해 중국의 총투자는 국내총생산의 거의 절반이나 된다. 상당 부분은 은행 대출을 통해 이뤄졌다. 중국에는 지난해 말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가 100개나 되고 시멘트 공장은 4813개나 된다. 은행돈을 빌려 중복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지난주 중국 금융감독 당국은 이러한 대출 소비 투자 행태가 은행 부실을 심화시킬 것을 우려해 대출한도를 정하고 심사를 강화하라고 은행들에 요구했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무분별한 대출과 투자를 오히려 조장하는 실정이다. 중앙정부도 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은 꺼리고 있다. 평가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위안화 가치를 묶어 두고 8%대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박래정 연구위원은 “은행 부실과 중복 투자의 문제가 터지면 중국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기로 접어들 수 있다”며 “중국 정부가 시도하는 금융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