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덕흥리 고분 첫 공개

<8뉴스>

<앵커> 천 6백년 동안 고구려의 숨결을 품어온 북한의 덕흥리 고분이 처음으로 SBS 취재팀에 공개됐습니다. 덕흥리 고분은 특히 고구려의 영토가 베이징까지 미쳤다는 학설의 근거를 제공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허윤석 기자가 직접 취재했습니다

<기자> 평양에서 서쪽으로 한시간 거리인 평안남도 강서군 무학산 끝자락 그 앞에 북한 국보 유적 156호, 덕흥리 고분이 자취를 드러냅니다. 계단을 따라 10미터쯤 들어가니, 폭과 높이가 1미터 조금 넘는 2개의 석실과 마주칩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묘 주인인 '진'에게 13군 태수들이 절하는 배례도 무덤 주인의 콧수염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필치가 빛납니다. 벽화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 보면, 고구려 초기 예술의 색채감과 화려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덕흥리 고분은 지난 1976년에 발견돼 천 6백여년 전의 신비를 되살려 놓았습니다.

[최광식/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 글씨에 쓰여진 내용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과 연대가 확실하죠. 408년, 초기벽화 고분으로 특히 평양 지역에 나타나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회벽에 먹으로 쓴 명문 6백여자에는 생활상은 물론, 주인공의 관직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벽화에는 '국소대형'이라는 고구려의 독특한 벼슬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고구려의 대신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요동과 하북 평원 일부를 다스리는 '유주 자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고구려가 한때 베이징까지 지배했다는 새로운 학설의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김형찬/북한 사회과학원 연구사 : 고구려의 서쪽 경계가 요하에서 대동강 하류가 아니라, 고구려는 지난 역사에 비해 훨씬 넓은 땅을 한때 통치했다는 증거입니다.]

덕흥리 고분은 북한내 다른 고구려 고분들과 함께 올 6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8뉴스>

<앵커> 덕흥리 고분은 한마디로 고구려 문화의 보물창고입니다. 무사도와 견우·직녀 설화, 불교의 도입같은 귀중한 사료들로 넘칩니다. 고구려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의 검은 속셈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보도에 이정은 기자입니다.

<기자> 고분 벽화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사들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화려하게 채색돼 있습니다. 당시 동북아 패권국가였던 고구려의 상무정신과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 사냥그림은 고구려가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갖고 주변세력을 지배하고 또 정복했던 그러한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들의 나들이를 그린 벽화입니다. 주름치마와 햇볕가리개까지 묘사돼 상류층 부인들의 호사스런 생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석구/한밭대 한국사 교수 : 덕흥리 벽화고분에는 화려한 벽화의 내용과 더불어 408년이라고 하는 연대가 쓰여져있기 때문에 학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연꽃그림은 망자에 대한 불교의 내세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교가 고구려에 공식 전파된 서기 372년에, 이미 상류사회에는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소를 끄는 남자와 뒤따르는 여자 견우와 직녀의 설화가 벽화로 확인되기는 처음입니다.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모습을 그린 이 독특한 벽화는 장생불사하는 조류숭배 신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덕흥리 고분은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측 의도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귀중한 자료들의 보고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SBS 200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