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를 되찾자] 지리부도에도 북간도는 우리 영토

"표시된 부분은 간도의 일부 지역으로 우리나라 영토로 명기되어 있다."

최근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담긴 획기적인(?) 내용이다. 국사교과서가 한 나라의 역사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만큼 이 내용은 '간도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역사적 근거가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지난해 검인정교과서로 발행한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는 89쪽에 대한제국 시기의 지도를 싣고 우리나라 영토로 표시된 두만강 너머 간도의 일부 지역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

장백산맥이 만주와 경계선 표시

'간도와 독도'라는 소제목의 역사 서술 속에서도 1901년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보내 간도를 함경도의 행정구역에 포함시키고 이를 청국에 통고했다고 싣고 있다. 간도 부분을 서술한 서울시교육청 민병관 장학사는 "강대국간의 협약에 의해 마치 국경이 정해진 것인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간도가 우리 영토의 일부였음을 뒷받침하기 위 해 지도를 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 장학사는 "이 서술은 기존의 교과서 내용과 다르지 않으며 역사학계의 인식 범주에도 벗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과서가 담고 있는 대한제국 시기의 지도는 거의 100년 전 지리부도 교과서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융희2년(1908년)에 간행된 '대한제국지도'라는 지리부도는 함경북도 위에 북간도라는 영역을 우리나라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지도에서는 두만강이 아니라 두만강 너머 장백산맥이 만주와의 경계선이다. 경계선은 백두산과 바로 연결돼 있다. 교과서를 소장하고 있는 신영길 한국장서가협회 회장은 "이 책은 대한제국 당시 중학생들이 쓰던 지리부도로 간도가 우리 땅이었음을 나타내는 자료"라고 말했다.

1909년 간도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은 교과서의 지도를 바꾸었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교과서인 지리서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계선은 두만강이 되었다. 간도전문가인 이일걸 박사(정치학)는 "당시 일본이 제작한 지도를 보면 조선 땅이었던 간도가 1909년이후 청의 땅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만주국이 성립된 1932년 이후의 지리서에서 두만강 이북의 땅은 만주국의 영토가 돼 있다. 단지 만주국 간도성(間島省)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지리부도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도 간도에 대한 부분을 누락시켰다. 

1908년 '조선역사'라는 교과서에 단순하게 나열돼 묘사된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과 1995년 을유감계담판은 일제식민지 시대 역사교과서에서 서술 부분을 찾기 힘들다. 일본어로 씌인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에 대한 찬사로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야 간도에 대한 역사서술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단기4282년(1949년)에 간행된 '우리나라의 생활(역사)'에서는 간도 영토 분쟁이 일어난 배경과 을유감계담판 당시를 한 쪽 가량 서술하고 있다.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가 청에 넘어갔으며 이는 '조선인의 의사가 아니었다'고도 밝히고 있다. 

1967년 '새로운 사회'라는 교과서에는 백두산정계비 부근의 약도와 정계비 비문이 실려있다. 약도에는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로 표시돼 있다. 1971년 인문계 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에도 비문과 부근 약도가 실려 토문강이 송화강의 지류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보다 더욱 직설적으로 간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고 있다.

정계비 비문의 사진 밑에는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또한 '간도 귀속 문제'라는 소제목의 역사 서술에서 "1900년에는 이범윤을 북변 간도관리사로 임명하여 우리 동포를 보호케 하였으니, 간도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일부나 다를 바 없었다"고 마무리짓고 있다.

90년대 이후 간도 주장 완곡해져

1976년 중학교 국사교과서에도 "이(간도협약)는 우리 의사가 아니며, 간도 지방에는 우리 동포가 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 보아도 간도는 우리 영토임이 틀림없다"고 뚜렷하게 서술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의 국사교과서는 대부분 '간도와 독도'라는 소제목 안에 간도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문장 또한 정교 (?)하게 다듬어져 '간도는 우리 땅'이라는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주장'으로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간도협약에 대한 문제에서도 단순히 협약이 무효라는 것에 그치고 있다. 

백두산정계비 비문과 약도도 사라지고 백두산정계비 사진으로 대체됐다. 여기에 한민족의 해외 이주라는 그림이 새롭게 들어갔다. 두만강 국경선이 그려져 있으며 만주와 연해주로 건너간 이주 인구 수를 도표화하고 있다. 간도에 대한 조심스러운 표현은 1992년 한-중 수교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되도록이면 완곡한 표현을 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의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간도에 대한 서술이 한 쪽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정계비와 간도협약에 대해 간략히 서술한 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7차교육과정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근-현대사가 선택심화과정으로 분류되면서 간도에 관한 서술도 비교적 충실히 실리게 됐다. 근-현대사 교과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검정을 거쳐 발행됐다.

국사편찬위원인 조광 고려대 교수(한국사)는 "교과서의 역사 서술은 각자 연구자에 따라 알아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간도 문제는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지 않는 만큼 정부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다만 역사 서술에 있어서 영유권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언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의 지리부도에서는 여전히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표시돼 일제 당시의 시각을 탈피하지 못했다.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간도영유권 주장과는 상반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교과서박물관(충남 연기군 소재)에 전시된 북한의 교과서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살펴볼 수 있다. 1998년 고등중학교 3학년 지리교과서는 백두산 천지에서 두만강의 가장 북쪽 지류인 홍토수까지 연결된 국경선을 표시하고 있다. 1962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 변계조약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약도이다. 당시 이 조약은 비밀조약으로 원문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0년 한 일간지에 의해 주요 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200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