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를 되찾자]"주장하지 않는 역사는 우리 것이 아니다"

한국교과서연구소 임상선 연구실장의 인터넷 아이디는 '안개바다'이다. 안개바다는 발해의 한자를 풀어 쓴 우리식 이름이라고 한다. 임 실장은 발해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몇 안 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발해는 아직도 '수수께끼의 왕국'이라고 불립니다. 학자들 조차 어려운 주제라고 여겨 연구를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해 드넓은 북방 영토를 호령했던 우리 민족의 마지막 왕국 발해. 그렇기 때문에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가 발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쉽게도 거의 없다.

그는 인터넷으로 국회도서관에서 박사학위논문을 검색한 결과를 내밀었다. 고대사 부문에서 발해 연구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직접 확인해보라는 뜻이었다. 신라사 논문이 68편, 고구려사가 17편인 데 반해 발해사는 고작 6편으로 가장 저조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국의 연구성과를 보면 더욱 놀랍다. 일본만 해도 발해를 주제로 한 연구논문이 우리나라의 3배에 이르고, 러시아도 우리나라보다 활발한 연구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발해는 우리에게 여전히 비밀이 가득한 고대 왕국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사람들이 저에게 왜 발해를 연구하는지 묻는데, 저는 한 번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신라는 왜 연구하고, 고려나 조선은 왜 연구합니까."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 발해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로서 지극히 당연하다는 그의 반어적 표현이었다. 물론 그가 발해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삼국통일 이후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그러나 발해 이후 계승관계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이 미개척 연구 분야로 남아 있었고, 이런 점이 그의 학문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발해연구 도전해볼 가치 있어"

발해 연구와 더불어 요즘 그는 일본 교과서에 나타난 우리 역사를 검증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교육이 미치는 악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예로 들었다. "아직까지 중국 사람 대부분은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로 여깁니다. 그동안 그렇게 서술된 교과서로 배워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는 발해가 당나라의 영역으로 표시된 일본 역사교과서를 펼쳐보이며 말을 이었다. "주장하지 않는 역사는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를 국제 사회에 당당하게 주장할 때 비로소 역사는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는 사이버발해박물관(http://palhae.nacool.net)과 교과서문제연구소 카페(http://cafe.daum.net/textstudy)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에 익숙한 지금 세대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함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요즘도 발해의 민족과 주민 구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토론하는 학술모임을 준비 중이다. 젊은 학자들이 발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발해는 조금만 연구하면 '대가' 소리를 듣습니다. 그만큼 연구가 미흡하다는 우스갯소리이지만 다르게 보면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이 있어 학자로서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습니까."

(뉴스메이커 200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