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북방고대사] <7> 오늘날의 만주

中 “소외된 만주, 골칫거리 될라” 개발 한창

지금부터 100년 전 만주는 일본·러시아 등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러시아는 19세기 말부터 풍부한 인적자원과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 정책을 폈고, 일본은 곡물 및 지하자원의 보고인 만주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압록강, 두만강을 건넌 조선족에 한족(漢族)까지 몰려들면서 20세기의 만주는 원주민인 만주족과 몽골족 외에도 수많은 민족이 뒤섞여 사는 ‘복합민족구성체’가 됐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날 무렵 만주지역의 인구는 1841만명으로 중국 전체 인구 3억6815만명의 5%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된 한족의 만주 이주로 현재 지린·랴오닝·헤이룽장을 합친 동북 3성의 인구 비중은 1952년에는 전체 인구의 7.2%, 1985년에는 8.78%로 높아졌다가 2002년 말 현재는 8.34%(1억815만명)으로 약간 낮아졌다.

2000년도 인구 센서스에 의하면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92만3400명. 이 가운데 120만명 정도가 지린성에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 72만명 정도가 헤이룽장(30만명), 랴오닝(35만명), 그리고 기타 지역(7만명)에 흩어져 살고 있다.

조선족의 거주 집중도가 특히 높은 곳은 옌볜(延邊)자치주인데, 2000년도 조사결과 약 85만4000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계속된 한족의 이주와 조선족의 한국 이주로 현재 조선족은 자치주 인구의 39.7%밖에 안 되며 한족이 57.4%를 차지해 ‘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이 쑥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의 정권을 장악한 후 만주 지역은 ‘동북(東北) 3성(省)으로 개칭됐다. 지린성의 창춘 제1자동차·지린 화학, 랴오닝성의 안산 철강·번시 제철·금주 석유화학단지, 헤이룽장성의 하얼빈 군수기지 등 대규모 국유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며 중화학공업이 중심을 이룬 이 지역은 70년대 말까지 중국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홍콩과 가까운 동남쪽 지역의 경제특구들에 화교의 투자가 몰리고, 80년대 중반부터는 14개 연해도시가 대외 개방 혜택을 받는 와중에서도 동북지역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90년대 중반 이후 동북지역과 화동·화남지역 간의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경쟁력이 없고 시장의 수요와 동떨어진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던 동북 3성의 국영기업들은 결국 국유기업 구조조정 조치를 맞게 된다. 근로자들은 철밥그릇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체불임금 지급과 새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게 된다. 여기서 ‘동베이현상’(東北現象)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한마디로 옛 만주지역은 중국의 고(高)성장의 축에서 소외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부는 동북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잊지 않고 않았다. 21세기 중국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동북지역의 산업구조를 현대적인 것으로 변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동북지역 대개발사업’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것은 2001년에 기안되어 2002년 9월 후진타오 신체제가 탄생한 공산당 제16기 대회에서 확정됐다. 이 사업은 그동안 침체됐던 랴오닝·헤이룽장·지린 등 옛 중화학공업기지를 재건함으로써 지나치게 경공업과 IT 위주로 치닫는 중국의 산업구조 왜곡을 시정하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중국 정부는 2003년 10월 말 100대 프로젝트에 1차 투자자금 총 610억위안(약 9조원)을 투입했다.

물론 여기에는 비경제적 요인도 고려되었다. 한반도 장래가 불확실한 상황 아래서 어느날 북한이 붕괴되기라도 한다면 만주족과 조선족이 많고 낙후된 동북지역의 정치적 위험이 커질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한국을 등에 업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세력 범위를 확장하고 ▲원기를 회복한 러시아가 미국의 세력 팽창을 견제한다는 구실로 개입하고 ▲만주 지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일본이 엔 차관과 경협 프로젝트를 구실로 만주 접근을 강화하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인식과 관련, 중국 정부의 ‘동베이 꿍청’(東北工程)은 21세기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걸맞은 만주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동북아지역 개발사업’이 옛 만주 경제의 영화를 재현시키려는 노력이라면 ‘동베이꿍청’은 홍콩 주권 환수와 마카오 주권 회복에 이어 마지막 남은 치욕의 역사적 잔재를 지우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일보 200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