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중국가서 발마사지 받지만 10년후면 마사지나 해줄지도"

"10년후엔 중국인과 처지 바뀔수도"

(진념 전 경제부총리의 취중 사담)

25일 서울 방배동의 양곱창집에서 진념(陳稔) 전 부총리를 만났다.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하던 1997년 당시 출입기자가 모인 자리로, 참석자는 조선·한겨레·MBC·한국경제·서울경제신문 등 5개사였다. 대부분 현직을 떠났으며 2명은 아직 노동부를 출입하고 있다.

진 전 부총리의 표정을 매우 밝아 보였고 예전처럼 활기찬 목소리였다. 대부분의 관료들이 현직을 떠나면 풀 죽어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날 모임에서 그는 예의 모습대로 각종 사안에 대해 명료한 자기 생각을 보여줬다.

술이 몇 순배 돌 무렵 진 전 부총리의 입에서 술맛이 딱 떨어질 법한 말이 나왔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 부산항은 이미 동북아 허브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10년 후면 부산항은 낚시꾼들의 놀이터가 될지 모른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에 가서 발 마사지 받지만 그 때가 되면 한국은 중국인들의 발 마사지나 해주며 지낼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에 화살을 돌려 “왜 러·일전쟁(1904년)에 대한 특집을 다루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몇몇 언론을 거론하며 “편집국장들에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데도 모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러·일 전쟁을 상기시킨 이유는 이랬다. 1904년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하면서부터 한국은 완전히 ‘범(汎) 일본권으로 종속되게 됐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체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진단하는 것 같았다.

10년전 일각에서 몇몇 철부지 포퓰리스트들이 ‘이제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근거없이 선언한 기억을 되살리면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서 “지금 한국은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 외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힘에 둘러 쌓여있으며 이것이 바로 러·일전쟁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가 던진 두가지 화두(話頭)는 일행들을 곧 논쟁에 몰입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은 수년 째 한국의 성장 동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노사 문제와 현 정권의 역할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는 노사 문제를 ‘기업’이라는 키 워드로 보고 있었는데 최근 사회 불안을 낳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이나 일자리 창출 역시, 기업이 주도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것이며 ‘대기업’과 ‘재벌’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재벌의 ‘황제(皇帝) 경영’은 개선돼야하지만 대기업 지원은 반드시 이뤄져야한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오는 4·15 총선이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침몰과 열린우리당의 득세(得勢)로 끝날 것 같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지만 진 전 부총리는 ‘4·15 이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선택이 바로 자신이 던진 2가지 화두-한국인이 중국인의 발 마사지나 할 날, 일본의 우월적 시스템-의 실현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국회까지 장악했을 경우 노 대통령이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경제 회생에만 매달리겠다”고 마음먹을 경우 한국은 되살아날 수 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다른 일을 벌려보자”고 딴 생각을 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3시간이 넘는 ‘격론’이 끝난 후 귀가할 즈음, 노 대통령이 이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빨리 배우고 변하고 있다. (나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오프(비보도)’ 전제를 깔고 허심탄회하게 흉금을 털어놓은 자리여서 글로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기자는 지금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음을 노 대통령이 그 빠른 학습능력으로 받아 들이고 고민을 덜어주길 바란다.

<문갑식 사회부 차장대우 드림>

(조선일보 200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