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고구려사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고구려를 ‘고대 한국의 삼국 가운데 가장 큰 나라’로 정의하고 있다.

“고구려는 전통적으로 기원전 37년 한반도 북부 동가강(冬佳江·비류수) 연안에 이 지역의 토착민인 부여족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주몽이 세웠다고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가들은 기원전 2세기에 건국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서기 371년부터 384년까지 통치한 소수림왕 때 왕권 강화를 위해 각종 율령을 반포했다. 고구려의 영토는 광개토대왕(재위 서기 391~412년) 때 크게 넓어졌으며, 장수왕(재위 서기 413~491년) 때 더 넓어졌다. 고구려 전성기에는 한반도 북부와 요동반도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의 상당 지역이 고구려의 통치를 받았다.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성격은 많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수나라(서기 581~618년)와 당나라(서기 618~907년)라는 통일왕조가 등장하면서 고구려는 점차 중국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다. 고구려 왕국은 서기 668년 한반도 남부의 왕국인 신라와 중국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패망했으며, 그 뒤 한반도는 통일신라 왕조(서기 668~935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고구려 멸망 뒤 만주 북부에 있던 고구려 유민들은 대조영의 지도 아래 발해를 건국했으며, 곧 신라와 대립했다. 발해는 한때 중국인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문화로 성장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역사가들은 신라에 더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왔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그 영토가 흡수된 이후 발해 지역은 더 이상 한국사의 영역에 편입되지 않았다.” 브리태니커에 이렇게 기술돼 있는 것은 그 집필을 한배호 교수 등 한국 학자들이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이 고구려사에 대한 학술적·정치적 공세를 강화하는 현재의 기조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브리태니커의 내용도 바뀔 수 있다. 2000년 올림픽 유치전에서 패배한 중국이 엄청난 시장 등 잠재적·경제력에다 다국적기업까지 동원하는 로비력으로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따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21 2004-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