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리즈1] 천상천하 중화독존 !
‘중국발 역사전쟁’… 왜 그들은 지금 ‘이념의 만리장성’을 쌓으려고 하는가 “그 뒤 청조 통치자들은 이 세계적 대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한 채 스스로를 닫아버리고 선진 과학기술을 배우는 것을 거부했다. 마침내 100여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기에 서방국가보다 크게 뒤떨어져 서방 열강의 군함과 대포 앞에 놓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역사적 교훈을 절대로 잊지 말라.”(중국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 “모든 민족의 독자성을 가둬버려라”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선 이른바 ‘강건성세’(康乾盛世)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강희제로부터 시작해 옹정제를 거쳐 건륭제에 이르는 청나라의 최전성기인 강건성세가 200여년 만에 되살아나 중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중국 작가 이월하의 ‘제왕 3부곡’이 4억권이나 팔리는 슈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대학은 대학대로 갑자기 청나라와 세 황제에 대한 연구를 봇물 터지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중국은 21세기 개막을 앞둔 이 시기에, 1661년에서 1799년에 이르는 138년의 과거사에 이토록 집착한 것일까? 왜 그들이 자랑하는 ‘중국 상하(上下) 5천년 역사’ 가운데 유독 이 시기를 지목해 장쩌민 국가주석과 주룽지 총리 등 국가 지도부까지 나서 총력적인 이념사업을 펼친 것일까? 그 해답은 오늘날 중국이 한국을 비롯해 주변국가 거의 모두를 향해 벌이는 ‘역사전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강건성세에 대해 중국의 역사가들이 주목하는 논점을 살펴보자. 첫째, 이 시기에 이른바 ‘국가 대통일적 국면’을 실현했다는 점을 역사가들은 강조한다. 오늘날 유지되는 중국의 영토가 사실상 이때 대부분 그 뼈대가 정해졌다는 인식이다. 특히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5세가 강희제의 아버지인 순치제 때 입조하기 시작한 뒤 사실상 이 시기에 티베트가 중국의 영향권에 안정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다. 이때부터 티베트는 중국에선 ‘서장’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둘째, 이때 중국의 인구가 3억명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역사상 남송 소희황제 시대에 처음으로 1억명에 도달한 이후 약 1200년 만에 인구 3억 고지를 돌파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이 시기 황제들이 만주족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대중국’의 관념을 관철시키고 있었다고 파악한다. 실제로 만주족과 한족의 융합과 화해를 상징하는 초대형 음식인 만한전석이 탄생한 것이 이 시기이며, ‘통일중국 군림천하’를 선언한 것도 이 시기의 황제 옹정제이다. 강건성세는 오늘날 중국의 영토를 사실상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 속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으로 자랑하는 인구라는 엔진을 확실하게 작동시키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지도부가 최우선적인 국가통합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실현한 시기이다. 영토와 인구와 국가 이데올로기의 삼박자가 들어맞는 이 절묘한 시대를 대상으로 중국 지도부가 이른바 의도적인 이념사업을 벌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사학계에선 이 사업이 역사상의 가상 영토를 겨냥한 역사전쟁으로 발전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참여하는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의 전략가이자 장군들이다. 그들이 채택하는 기본 전략은 ‘현재 중국 판도 위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사에 귀속된다’는 고위금용(古爲今用)의 이론체계이다.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그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민족과 국가, 문명의 역사는 현재의 중국사라고 규정해버리는 식이다. 바로 ‘이념의 만리장성’을 쌓고 모든 민족의 독자성과 독립성을 가둬버리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재 중국에 존재하는 56개 소수민족의 역사가 송두리째 중국 역사로 편입된다. 모든 분리독립세력을 ‘가상의 적’으로 이 이론체계는 근본적으로 연역법적일 수밖에 없다. 결론을 미리 만들어놓고 그것을 역으로 실증하기 위한 사례를 수집해 정리하는 식이다. 그 작업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이 지난 1992년 ‘만리장성의 출발점은 이제까지 알려져 있는 하북성 산해관이 아니라 요녕성 단동시 압록강변’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의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을 압록강변으로 잡는 것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중국 세력이 여기까지 진출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역사전쟁의 포탄이 ‘고구려’에서 맨 처음 터진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21세기 들어 한반도에서 활성화하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다이너미즘 때문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이너미즘이 중국 지도부와 역사가들을 자극해 아직 채 장성을 완성하기도 전에 전투에 돌입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조한(북한과 남한) 학자들은 고구려와 지금 조선반도의 승계 관계들을 제멋대로 선전하고 고구려가 생활하던 지구는 그들의 고토라 하고, 중국의 동북지구에 대한 역사주권을 극력 부정한다. ‘만주는 자고로 우리 선조들의 땅’이고 ‘장백산은 우리 조상의 성산이다’고 헛소리를 치고 있으며, 공공연히 북방 영토를 수복하자고 (국회에까지) 제출하고 있다.”(동북사범대학 유후생 교수) 중국이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 계획에 대해 기술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런 역사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당연히 이 ‘이념의 만리장성’은 고구려 문제 때문에 한민족(조선족)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만주지역(중국으로 보면 동북지역)에만 쌓아지는 것은 아니다. 장성의 밖과 안에 있는 잠재적 강대 세력이나 분리독립 세력이 모두 ‘가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티베트·몽고·신장위구르가 다 그런 대상 지역이자 대상 민족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부자의 2차에 걸친 이라크 전쟁이 실행되고 미군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잇따라 진주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중동지역과 시베리아 그리고 중국 서부내륙으로부터 중국 중심부로 들어오는 에너지 라인이 군사적으로 포위되거나 위협에 노출되기 시작한 셈이다. 나아가 21세기 세계 패권적 지위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질 전면전적인 경쟁은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결정적으로 불안정 기류 속으로 밀고 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언젠가 시도할 전략이 중국 주요 지역의 분리독립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진영에 견제당할 것 중국은 이런 불안정한 역학관계 속에서 ‘이념의 만리장성’ ‘역사의 방풍림’에 점차 쏠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전략은 중국의 의도와는 달리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한민족을 비롯해 티베트·몽고·신장위구르 등 주변 강대 소수민족의 반발과 문화적 반중 기류가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선봉으로 나설 이 문화전쟁의 양상은 (1) 한국-중국간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대전 (2) 중국 당국의 의도적인 한류 차단 (3) 한국-중국 스포츠에서의 국민감정적 경쟁심 촉발 (4) 상대방 제품에 대한 민간 차원의 자연발생적인 불매운동 확산 (5) 세계의 미디어와 주요 사이트를 겨냥한 양국간 전면적 홍보전 격화 (6) 민간 차원의 ‘한민족-몽고-티베트-신장위구르 역사동맹’ 형성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1차적으로 한국이 대중교역 등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국제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미국과 유럽 진영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1월22일 “한국 정부가 많은 자금을 투입해 고구려 연구학회를 발족키로 하는가 하면, 남북이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해 한목소리를 내는 등 한국인의 민족감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이런 개입의 시발일 뿐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이런 식의 역사전쟁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념의 만리장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전제가 한족 중심주의의 전면 폐기라는 대단히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이 쌓는 ‘21세기판 이념의 만리장성’은 매우 불안정하다. 나아가 체제 수호적이라기보다 전쟁 유발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역사적으로 만리장성은 북방 기마민족의 무력이 아니라 민족갈등의 국면에서 성을 지키는 쪽에서 스스로 방어를 포기하고 문을 열어버림으로써 돌파되곤 했던 것이다. (한겨레21 200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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