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朝 들어 잃어버린 발해, 실학자들이 되살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만주 지역 역사의 기억을 되살린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지식인들은 문명국으로 자처해 온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오랑캐로 여겨온 왜와 여진족에게 침략당하게 됐는가를 반성했다. 약한 나라가 된 원인을 찾다가 역사 속에서 만주 땅을 잃어버린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만주에서 일어난 고구려를 확인하게 되어 고구려 고토(故土) 회복의식이 싹텄고, 그 연구를 진행하면서 발해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만주 지역의 잊혀졌던 역사들이 되살아나게 됐다.

한백겸·신경준·이종휘·정약용·한치윤·한진서·유득공 등 실학자들은 우선 고구려와 부여, 발해 등의 건국 장소와 활동 무대 등 지리고증에 힘을 기울였다. 점차 연구가 축적되면서 발해가 통일신라와 대등할 정도로 강대국이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됐고,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1784)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쓰지 않음으로써 두만강 북쪽과 압록강 서쪽이 누구의 땅인지 알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립하던 ‘남북국(南北國) 시대’를 주창하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 2004-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