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과서의 ‘고구려’문제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사 공부를 하면서, 고구려는 신라·백제와 함께 당연히 우리 조상들의 나라로 인식해 왔다. 따라서 중국 정부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한다는 사건에 대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우리의 교육 현장이, 고구려 민족이 우리 조상이고 고구려의 역사가 우리 민족의 역사임을 확고히 가르치고 있는가를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된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하)의 8쪽에서 53쪽까지에는 ‘국어가 걸어온 길’이라는 단원이 있는데, 여기 고구려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역사 시대 이후 만주 일대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우리 민족의 언어는 대체로 북방의 부여계 언어와 남방의 한계(韓系) 언어로 나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분화되어….”(16쪽) “고려 건국부터 16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중세 국어라 한다.”(44쪽) 먼저 위 16쪽의 내용을 보면, 고대의 우리 민족은 서로 이질적인 부여계 언어와 한계 언어의 두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주장은 중국 역사책인 <삼국지>의 동이전에 나오는 기록을 일본 제국주의 식민 사관의 학자들이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한 것을 비판 없이 답습한 것이다. 실제 이 <삼국지>에는 부여계 언어와 한계 언어가 서로 달랐다는 언급이 전혀 없는데, 일제 식민 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이른바 부여계에 속한다는 고구려를 조선의 역사에서 제외시키고, 1932년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을 고구려의 계통에 넣고자 조작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조선 민족은 신라인들의 후손일 뿐이고, 고구려와 발해는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 세운 만주국들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펴서 만주국의 계통을 확립하고, 조선의 역사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런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고구려 말과 신라 말이 아주 다른 언어이고, 따라서 고구려 사람과 신라 사람은 다른 계통의 민족이라는 주장을 펴야 했다.

국어 교과서에 고구려 말과 신라 말이 달랐다는 말은 없지만, 위 국어교과서 44쪽에서 “고려 건국부터 16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중세 국어라 한다”라고 우리말 역사의 시대를 구분한 것은 고구려 말과 신라 말이 아주 달랐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결국 이 교과서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 아니라는 일제 식민 사관의 주장을 답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 건국부터 중세 국어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근거는, 신라에서 고려로 국가가 바뀌면서 그 수도를 경주에서 개성으로 옮겼다는 데에 있다. 이 시대 구분은 경주 지방의 말과 개성 지방의 말이 아주 달랐음을 전제로 하고 있고, 또 ‘경주 말은 신라 말이고, 개성 말은 고구려 말이며, 신라 말은 고구려 말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결국 교과서의 이 우리말 역사를 쓴 사람은 고구려 말과 신라 말을 아주 다른 말로 생각하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1930년대 일제 식민 사관의 영향인 것이다.

30년대 부터 일본 학자들이 고구려와 신라를 서로 다른 민족이 세운 나라라고 했고, 또 이미 수십년 전부터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에서 제외하는 논저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이제 중국 정부가 나섰다는 이유로, 때늦게 우리 학자들과 정부가 고구려를 빼앗길 수 없다고 야단법석이다. 지금이라도 인식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렇게 고구려와 신라를 다른 민족인 것처럼 서술한 글을 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면서 어떻게 고구려를 되찾겠다는 말인가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을 반대하는 시위나 서명 운동보다도, 또 고구려 연구재단을 만드는 일보다도, 우리 교과서에서 왜곡된 사관을 가진 글부터 삭제하여 교과서를 개편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김동소/대구가톨릭대 국어학 교수>

(한겨레신문 2004-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