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시비는 영토문제”

(::‘역사지키기 시민연대’대표로 뽑힌 박원철 변호사::) “중국이 벌이고 있는 고구려 역사 왜곡의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욱 심각합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역사 침략으로 자칫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1일 창립된 고구려역사지키기범민족시민연대 총회에서 대표에 선출된 박원철(55·사진)변호사. 정부가 100억원을 출연해 오는 3월 1일 출범하는 ‘(가칭)고구려 연구재단’설립에도 참여하고 있는 박 대표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인식 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이 단순히 역사를 왜곡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간적으로 고조선·발해를 포함한 2000년을, 공간적으로 한강 이북을 앗아가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결부된 문제라는 것이다.

동북공정프로젝트에 중국의 정치적인 전략이 깔려 있다는 그는 “동북공정은 동북아지역에서의 패권을 확보해 정치·군사적 우 위를 점하고 유사시 한반도의 상황에 개입할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인(公認)작업”이라는 것. “북한 정세가 급변했을 때 북한은 남한이 아닌 중국의 영향력 하에 흡수될 수 있으며 나아가 국경·영토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걱정했다.

현재 북한과 중국은 자국 영토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해 놓은 상태로 실사를 거쳐 오는 6 월 결정될 예정이다. 북한은 지난 2002년 ‘고구려 고분벽화군’ 을 등재신청 했으나 서류미비 및 보존관리 문제로 보류된 경험이 있다. 이에 비해 고구려 유적을 방치해두던 중국은 최근들어 ?慈막?고분군과 성곽을 대대적으로 복원했다. 자칫 중국만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북한은 등재되지 못할 때에는 국제사회로부터 ‘고구려사〓중국사’로 공인 받을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세계화?역행한다며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민족주의의 충돌’의 기운이 느껴지는 동북아에서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달리 고구려역사지키기는 우리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켜나가려는 것입니다.” 중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부활시키면서 고구려사를 치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국 고구려사 ’라는 역사책으로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입시에서 국사과목이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뀌는 등 국사 교육이 소홀해지고 있는 실정. “특히 고구려사 관련 사료( 史料)가 대부분 북한과 중국에 있는데다 한자로 돼있어 연구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연구인력 또한 턱없이 부족합니다.

고구려사로 학위를 받은 이가 14명에 불과한데 비해 중국은 고구려사 연구인력만 무려 3000명에 달해 큰 대조를 보입니다.” 이미 외국의 교과서에 한국사 부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그는 이를 바로잡기위해 “한국사에 대한 번역작업을 서둘러야 하며 교육과 홍보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재단설립과 지원이 친일인명사전과 같이 1회성으로 끝날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고구려의 축제인 동맹제를 재현해 생활 속에서 고구려 문화가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고구려를 소재로 한 공연물을 만들어서 세계무대에 올리는 것이 고구려사를 알리는데 홍보효과가 크다고 봅니다. 이와함께 고구려 유물전이나 사진전 등 문화·예술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합니 다.” 고구려역사지키기범민족시민연대는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등 100 여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고구려역사 지키기 캠페인 및 10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문화일보 2004-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