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 ‘지봉유설’

“불랑기국(佛狼機國)은 서양의 큰 나라이다. 그 나라의 화기를 불랑기라 부르니 지금 병가(兵家)에서 쓰고 있다.” “구라파국을 대서국(大西國)이라고도 하는데, 마테오리치라는 자가 저술한 ‘천주실의’ 2권이 있다. … 그 풍속에는 임금을 교황이라 일컬으며 교황의 지위를 세습하는 아들이 없고 어진 이를 선택하여 세운다.”

위의 기록은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 묘사된 17세기 초의 포르투갈(불랑기국)과 이탈리아(대서국)의 모습이다.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서양 여러나라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이처럼 세계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졌던 이수광이지만 ‘지봉유설’에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깔려 있다.

서문에 ‘우리 동방의 나라는 예의로써 중국에 알려지고 박아(博雅)한 선비가 뒤를 이어 나타났으되 전기가 없고 문헌이 적어, 내가 보잘 것 없는 지식으로 한두 가지씩을 적어두었다’고 하여 우리 문화와 인물 소개에 편찬 동기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본문 곳곳에도 이러한 정신은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군자국이라는 점과 동방은 전통적으로 착한 품성을 가진 곳임을 강조하고 ‘우리나라 사람의 일로서 중국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부녀자의 수절, 천인의 장례와 제사, 맹인의 점치는 재주, 무사의 활쏘는 재주를 들었다. 또 경면지·황모필·화문석을 우수한 물산으로 소개하였다.

‘지봉유설’은 당대까지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총합된 문화백과사전으로서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세계문화에 대한 수용에 진취적인 입장을 취했다. 월남·중동·유럽의 여러나라를 소개하면서 이들 국가의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문화·종교 등을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다. 포르투갈이나 영국에 대해서는 이들 국가가 보유한 군함이나 화포를, 이탈리아 항목에서는 ‘천주실의’를 소개한 내용이 주목을 끈다.

이수광은 천주교뿐만 아니라 불교·도교 등 이단 사상에 대해서도 포용성을 보이면서 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중국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면서 열린 사고를 폈던 것은 고립되고 폐쇄된 국가 조선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개방적으로 발전해 갈 조선을 상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수광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자였지만 성리학에서 실용적·실천적 요소를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 성리학 이외의 학문이라도 국부(國富) 증진과 민생 안정에 유용한 것이라면 모든 학문을 폭넓게 수용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그가 실학의 선구자로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현재 규장각에는 ‘지봉유설’ 외에도 ‘성호사설’, ‘잡동산이’,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실학풍을 보여주는 백과사전적 저술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들 저술은 선인들의 학문의 폭과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이수광의 학문과 사상은 오늘날에도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사를 지켜야한다며 고구려 연구재단을 설립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가 전통과 역사에 대해 소홀히한 것도 이미 이러한 위기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글로벌 시대를 강조하며 무분별하게 세계화에 편승하는 과정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에서 국사는 선택과목이 되었고, 고시에서도 국사는 빠졌다. 정부가 자국사를 홀대하는 마당에 중국이나 일본의 한국사 공략은 당연히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세계에 대해 개방적인 사고를 보였던 이수광과 그 결실인 ‘지봉유설’이 결코 박제화된 옛 책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책이 주체성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경향신문 2004-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