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북방고대사] 100년 넘은 4강구도, 6세기 들어 변화

만주 지역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중국과는 별개의 질서를 형성했던 상황은 6세기 중엽 정세가 바뀌면서 도전을 받게 된다. 100년 넘게 지속되었던 동북아의 4강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한반도 내에서도 역학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먼저 신라와 백제가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맺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략하면서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잃고 한반도 안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어 수(隋)와 당(唐)이 250여년 동안 계속된 남북조(南北朝)의 분열을 끝내고 통일 중국의 시대를 다시 열자 고구려는 그 압박을 받게 된다.

서기 598년 고구려 영양왕이 요서 지방을 공격한 것이 발단이 되어 수의 문제(文帝)와 양제(煬帝)가 잇달아 백만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다. 을지문덕(乙支文德) 등의 지략으로 고구려는 수를 물리쳤지만, 국력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수의 뒤를 이은 당은 북방 유목 민족 돌궐마저 무너뜨리자 마지막 남은 고구려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한동안 유화 정책을 펴던 당은 고구려에서 대당(對唐) 강경파인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하자 태종(太宗)이 수십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세 차례나 고구려를 공격했다.

고구려는 양만춘(楊萬春) 등의 분전으로 이번에도 나라를 지켰지만 국력을 지나치게 소모하여 서기 668년 당과 신라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고구려의 멸망으로 동아시아는 결국 중국 중심의 단일 질서로 재편됐다. 그리고 이런 틀은 19세기 중반 서양 열강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 1000년이 훨씬 넘게 계속됐다.

(조선일보 200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