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어는 古代한국어의 틀 중국의 나라 주장 어불성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원로 국어학자인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78)가 언어학적 차원에서 이를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그는 고대 한국어의 어원을 중심으로 중국과 고구려가 다른 나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고구려, 신라, 가야 시조의 난생(卵生) 신화는 고구려가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실증한다. 옛날에는 사람의 뜻을 지닌 말이 부족을 대표하고 나라이름까지도 되었다. 고구려(高句麗)의 처음 이름은 구려(句麗)였다고 한다. ‘구려’의 어근은 ‘굴’로서 사람의 뜻을 지닌다. 멍텅구리, 장난꾸러기의 ‘구리, 꾸러기’의 어근 ‘굴’이 사람의 뜻을 지닌다. 몽골, 위굴(위구르)의 ‘골 · 굴’도 사람의 뜻을 지닌다. 일본에서는 멍청이를 ‘봉구라’라고 하는데 ‘구라’는 사람을 뜻한다. 멍텅구리의 ‘구리’와 같은 어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구려의 지명(地名)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고구려어의 편린을 찾을 수 있다.

‘곧(古次)’은 입을 뜻하는데 이 ‘곧(곶)’은 다른 알타이 언어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유어다. 이 ‘곧(口)’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찌(口)’로 변하는데 어근은 ‘굳’이다. ‘잠고대(잠꼬대)’의 ‘고대’는 말을 뜻하는데 어근은 ‘곧’으로 고구려어 ‘곧(口)’과 같은 어원이다. 말이란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의 어원은 입의 뜻을 지닌다.

‘곧’이 일본어에서는 ‘고도바(言)’인데 ‘고도(言)’의 어근이 ‘곧’, ‘잠고대’의 ‘곧’과 어원이 같다. 고구려어 ‘곧(口)’은 고대 한국어이고 이것이 일본에 건너간 것이다.

일본어의 발생지가 기타큐슈(北九州)라고 하는 것은 일본학계의 견해다. 그러나 고구려어 ‘곧(口)’이 신라나 가야를 지나쳐 바로 기타큐슈로 건너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시로서는 강성한 고구려어가 고대 한국어의 틀이 되었을 것이고, 기타큐슈와 가까운 한반도 남쪽지역에서 고대 한국어가 선사시대부터 건너갔을 것이다.

이렇듯 고구려어 ‘곧(口)’이 고대 한국어, 일본어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나라였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예증이 된다.

‘곧’은 다른 알타이 언어들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한어(漢語) ‘口’와는 비교가 된다. 나는 한어도 조어시대(祖語時代)에는 알타이 언어들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고구려어 ‘곧(口)’이 한어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당시 고구려의 세력이 엄청나게 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의 수사(數詞) 중 네 개가 고구려의 지명어(地名語)에 나온다. 3을 가리키는 ‘미(密)’, 5를 가리키는 ‘이쓰(于次)’, 7을 뜻하는 ‘나나(難隱)’, 10을 의미하는 ‘도(德)’가 그것이다.

이것은 고구려시대의 고대 한국어가 일본에 건너갔음을 말해준다. 여기서도 고구려어인 고대 한국어와 고대 일본어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중국의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억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정범 국어학자·경희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200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