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필사본은 진짜"

"수록 향가의 어휘, 고려시대 이전 기록"
이도흠 교수등 6명 공동연구서서 주장

지난 1989년 첫 발견 이후 진위(眞僞) 논쟁이 계속돼 왔던 ‘화랑세기(花郞世記)’ 필사본이 진짜라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학)는 이번 주말 간행되는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도서출판 주류성)라는 책에 실린 논문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에 나오는 송랑가(送郞歌)라는 향가를 분석한 결과,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그것을 베껴 적은 박창화(1899~1962)씨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아 온 학계의 다수 입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국문학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이 필사본이 조작된 것이라면 거기 들어 있는 향가는 일제시대 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나 양주동(梁柱東)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송랑가를 어절(語節) 단위로 끊어 읽은 결과 전체 17곳 가운데 7곳이 오쿠라 신페이나 양주동의 해석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즉 주격 조사로 ‘시(是)’가 아니라 ‘지(只)’가 사용됐고, ‘앞에’도 ‘전랑중(前良中)’이 아니라 ‘전희(前希)’로 표기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표기는 현전 향가보다 오래된 향가이기 때문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화랑세기 필사본은 원본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책에 실린 다른 논문들도 화랑세기 필사본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정운용 고려대 교수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 본 신라 화랑제의 성립’이라는 논문에서 화랑제 성립 과정을 해명하는 데 기존 자료와 화랑세기 필사본이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희만 성화대 교수는 ‘필사본 화랑세기의 사학사’라는 논문에서 화랑세기 필사본이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史書)라고 주장했다.

‘화랑세기’는 7세기 말 신라의 문장가인 김대문이 편찬한 화랑의 전기로 삼국사기에 극히 일부만 인용되어 전할 뿐이었다. 그러나 1989년 32쪽짜리 발췌 필사본이 처음 알려지고, 이어 1995년 162쪽짜리 모본(母本)이 공개됐다. 그러나 신라 화랑 32명의 전기를 담은 이 책은 필사 과정이 밝혀지지 않고, 내용도 근친혼과 동성애 등 이제까지 알려진 화랑의 모습과 크게 다른 것이어서 진본 여부가 논란이 됐다.

(조선일보 / 이선민 기자 200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