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북방고대사] 북한과 중국의 '同床異夢'
만주유적 둘러싸고 兩國학계, 판이한 해석 내놔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과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각각 17명씩 참가한 공동 조사단을 구성하고, 내몽골·랴오닝·지린·헤이룽장 지역의
청동기시대 및 고구려·발해 유적을 답사하고 시굴과 발굴 조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양쪽은 출토 유물의 해석에서 현저한 시각 차이를 노출하여 공동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북한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 확대하고, 다롄(大連)의 강상(崗上)과 러우상(樓上) 무덤을 고조선 지배층의 순장(殉葬) 무덤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1966년 이런 내용을 담은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등으로 자료의 정리가 늦어진 중국은 30년 후인 1996년 ‘쌍타자와 강상(雙 子與崗上)’, 1997년 ‘육정산과
발해진(六頂山與渤海鎭)’을 각각 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중국 학자들은 만주 지방의 유적들이 국가 단계에 도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으며
강상과 러우상의 무덤은 혈연관계의 씨족 공동묘지였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한·중 역사분쟁의 단초는 이미 30여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조선일보
200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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