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북방고대사] (3) 청동기 문명과 고대국가의 출현

예맥족 엘리트 집단이 첫 고대국가 고조선 세워

한민족이 세운 첫 번째 고대 국가가 고조선(古朝鮮)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단군신화(檀君神話)로 우리에게 친숙한 그 고조선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고조선에 관한 자료가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에 나오는 짧은 기록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고조선의 영역과 성립 시기 등은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만주 지방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진 결과, 한반도 안에서 맴돌던 고조선에 대한 논의는 만주로 확대되었다.

고조선은 만주지방의 청동기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성립됐다. 이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늦어도 기원전 2000년 무렵 시작됐고 그 위치와 주체에 따라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내몽고 동남부와 랴오닝(遼寧) 서부의 동호(東胡) 집단 랴오닝(遼寧) 중부 및 요동반도(遼東半島)와 지린(吉林) 중부 및 남부 지역의 예맥(濊貊) 집단 지린(吉林) 북부 및 흑룡강 지역의 숙신(肅愼) 집단이다.

고조선은 이 중 예맥 집단의 엘리트들이 중국 세력의 진출에 맞서면서 세운 나라였다. 고조선은 늦어도 기원전 8~7세기 무렵 초기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었고 기원전 4세기에는 왕국(王國) 단계로 성장했다.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서(遼西)에서 시작돼 요동(遼東)을 거쳐서 평양으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처음에는 요동반도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중국의 전국(戰國)시대 연(燕)나라의 팽창에 따라 점점 동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 학자들은 고조선과 연(燕) 나라의 경계인 ‘패수(浿水)’를 현재의 만리장성 너머 난하( 河)로 봄으로써 두 나라의 접경을 현재의 허베이(河北) 북부 지역까지 확대하는 혁신적인 주장을 제기했고, 이러한 주장은 한국에서도 일부 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다. (동호 집단은 몽골족의 일부로 사는 지역에 따라 오환·烏桓 또는 선비·鮮卑라고도 불렸으며 훗날 거란족으로 이어진다. 숙신은 퉁구스족의 한 갈래로 말갈·靺鞨, 읍루· 婁, 물길·勿吉로도 불렸고 뒤의 만주족이다.)

고조선은 기원전 109년 막강한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침공에 맞서 1년여 동안 대항할 수 있었던 군사력과 사회 조직을 갖춘 나라였다. 왕권을 중심으로 강력한 지배 체제를 형성했으며, 법률 집행을 위한 강제력을 보유하였다. 돌무지 무덤, 돌널무덤, 고인돌 등 석재를 이용한 무덤들이 그 같은 사회 체제의 유산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요동 반도의 구릉지대와 지린성 동남부에서 120기 이상 발견된 북방식 탁자 모양 고인돌은 한반도 안에서 발견되는 고인돌과 거의 같은 형태로, 이 지역 문화와 인간이 한반도로 흘러들었음을 방증한다.

고조선은 또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인구를 지배하고 중국과 한반도 남부 지역 사이의 장거리 교역을 통제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획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동반도 남단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1000년 경에는 벼농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밝혀져, 고조선 경제력의 바탕이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고조선에 이어 만주 지방에 세워진 예맥 집단의 두 번째 고대국가는 부여(夫餘)로, 고구려(高句麗)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성립된 부여는 현재의 지린성(吉林省) 창춘(長春)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해 기원 후 494년 고구려에 병합될 때까지 약 1000년간 계속됐다.

유화부인과 주몽설화에서 보듯, 고구려는 부여와 같은 종족이 세운 나라로, 기원전 2세기 무렵 압록강 중류의 만주 지역에 설립되었다. 같은 시기 한반도 북부 함경도 지방에는 옥저(沃沮), 강원도 북부에는 동예(東濊)가 같은 예맥 집단에 의해서 초기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고조선에 예속돼 있다가 고조선이 멸망한 후 고구려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됐다.

<박양진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조선일보 2004-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