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산업스파이

전쟁에 있어서 첩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략사상가 손무(孫武)였다. 그 생각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 속에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적의 의도는 점을 쳐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귀신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결국 ‘지피(知彼)’는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곧 ‘용간(用間·첩자쓰기)’이다. 손무는 그의 대표적 저서 손자병법에서 “어떤 전쟁이든 첩자 한 사람이 승패를 결정한다”라고 단언했다.

우리 역사상 ‘용간’에 뛰어난 대표적 장수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꼽힌다. 영양왕 23년 수 양제(煬帝)가 7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그는 첩자들을 보내 정보를 수집했고, 자기 스스로도 거짓 항복을 청해 적정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적의 군량미 부족 상황을 간파, 패주하는 척 하면서 평양성 부근까지 유인한 뒤 일대 반격전을 전개함으로써 대승리를 거뒀다. 바로 살수대첩이다.

총성없는 전쟁터인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정보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기업은 경쟁 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첨단 기술 정보를 손에 넣는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자산이다. 그래서 수많은 산업 스파이들이 세계 각국, 특히 기술 선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 미국이 기업기밀 도난으로 입는 손실이 한해 1천억달러에 달한다는 FBI 보고서도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전세계의 통신을 감청하는 미국의 첩보기관 ‘에셜론’이 독일의 기업정보를 훔쳐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양국간에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국가정보원이 ‘산업스파이 식별요령’을 펴냈다. IT강국 한국에 대한 외국 첩자들의 기술 절도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 첩보전쟁의 경우 방어만 해서는 안되며 우리도 적극적인 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점이다. 손자병법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세계의 선진기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에서는 ‘산업스파이 행위는 최고의 기술개발(R&D)’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세상이다.

(경향신문 2004-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