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의 국제논평] '독도' '고구려' 읽기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철학자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영구 평화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국제정치의 이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칸트에 따르면 영구 평화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의 확산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심화이다.

그의 자본주의 평화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할 가능성이 적다. 왜냐하면 시장경제의 확산과 교역을 통해 상호의존적 경제 관계가 구축되면 기업인들 간에 국제적 유대가 돈독해지고,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기업의 이익을 저해하는 전쟁 행위를 반대하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의 민주 평화론도 설득력이 크다.

칸트는 공화정을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 체제가 견제와 균형을 통해 선전포고와 같은 중차대한 결정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지도자의 자의적 결정에 따른 전쟁 발발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칸트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가령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자리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끼리 전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칸트의 이 이론을 동북아시아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들어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간에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고있을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중국이 아직 사회주의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나 일본 못지 않게 절제된 외교 정책을 보여 왔다. 그런데도 이들 간에는 항시 대립과 갈등의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가 간과한 대목은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이다.

한 민족의 정체성은 과거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국가의 대외적 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무리 국력 격차가 크고 국익은 상호 보완성이 있는 것이라 해도 상대민족의 정체성을 섣불리 건드리게 되면 관련 국가 간에 갈등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독도 영유권 및 고구려사 문제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사업을 통한 고구려사 왜곡은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에 일격을 가하는 적대적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국민적 분노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대응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독도는 이미 우리 땅인데 일본 측 행동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없다. 오히려 그러한 반응은 새롭게 발흥하고 있는 일본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 빌미만 줄 뿐이다.

그리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건도 국민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고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독도와 고구려사 문제를 우리의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과도하게 정치화할 경우, 일본과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겨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현실적 위상과 동북아지역 평화 구축이라는 대승적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좀더 슬기롭게 대응하는 것이 국익을 신장하는 길이라 하겠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한국일보 200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