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여는 역사] 中은 왜 고구려를 뺏으려하나

중국은 2002년부터 동북 3성 즉 ‘만주’지방의 사회과학원과 대학 및 연구기관을 총동원하여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0여명의 연구진이 참가한 이 계획은 5년간 우리 돈으로 약 3조원을 투입하여 고구려의 기원과 귀속문제를 밝히는 일이다. 이미 7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고구려가 중국변방민족정권이라 하고 그 정당화를 위한 이론 정립에 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 신문에도 이미 발표되었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리도 고구려사 연구재단을 설립하여 적극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이 왜 ‘느닷없이’ 이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가 그 진의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옳은 대응방법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깔려있지 않은가 하는데, 첫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자리잡혀 가는 것 같은 중국 내부 사정에 있으며, 둘째는 한반도의 남북공조 통일기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화주의 패권전환 맞물려-

첫째 원인부터 말해보자. 중국이 중세시대까지의 중화주의를 현대적 패권주의로 전환하려는 징조가 아닌가 한다. 중세시대까지 동양세계의, 아니 전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했던 중국은 근대로 오면서 하나의 변방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중화주의를 회복하려는 의욕이 군비강화·핵무장·우주개발·미국에의 맞대응 등을 통해 패권주의로 가려 하며, 그것이 두 번째 원인 즉 한반도 통일기운과 맞물려 고구려 빼앗기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다음, 시장경제체제가 심화하면서 사회주의를 대신해서 이 거대한 국가의 정치적·사회적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혹시 19·20세기적 내셔널리즘에서 구하려하며, 그런 필요성의 일단이 대외적 자극 즉 고구려 빼앗기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백번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중국과 동아시아의 21세기는 20세기 못지 않게 불행한 세기가 되고 말 것이다.

다음, 21세기에 들어선 거대한 다민족국가 중국의 큰 고민인 소수민족 이탈저지책의 일단이 아닌가 한다. 이 역시 두 번째 원인과 연결되는데, 한반도의 남북공조 통일기운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옌볜자치주 조선족의 거취문제다. 통일 후의 한반도와 조선족자치주의 관계가 밀접해질 것은 확실하며, 설령 독립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그 같은 관계발전이 전체 소수민족사회에 영향을 줄 것은 당연하다.이 때문에 50주년을 맞은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는 대충 말해서, 고구려사와 발해사가 중국의 지방자치정권사였음으로 중국조선족의 역사는 중국사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역사관’, 55개 소수민족사회는 중화민족에 일체화되어 있음으로 중국 조선족은 곧 중국민족이라는 ‘민족관’, 중국 조선족의 고국은 남북한이지만 조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조국관’ 등 이른바 ‘3관운동’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이 고구려를 빼앗으려는 두번째 원인이 한반도의 남북공조 통일기운에 있다는 점에 대해 말해 보자. 지난 20세기 전반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한반도가 해양세력 일본에 편입됨으로써 그 ‘만주’ 침략의 발판이 되었고, 그 후반기의 냉전시대에는 한반도가 분단됨으로써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소 공조체제가 대립하여 동아시아 전체의 분단으로 연결되면서도, 대륙쪽 사회주의 세력과 해양쪽 자본주의 세력이 냉전체제 아래서 균형을 이루었다.

-남북통일 대비 만주 선긋기-

6·25 전쟁은 그 균형을 깨고 한반도가 처음에는 대륙세력권으로, 다음에는 해양세력권으로 통일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 유엔군과 중국군 및 소련 공군의 참전으로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어느 쪽으로도 통일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공조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베트남식 전쟁통일도, 독일식 흡수통일도 아닌 한반도식 ‘협상통일’의 기운이 일어나게 되었다.

한반도의 남북공조 통일기운은 아직도 제국주의적·냉전주의적 국제관계 인식에 한정되어 있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러시아 등 대륙세력은 한반도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미국·일본 세력권에 포함되어 통일될까 걱정되고, 반대로 미국과 일본은 중국·러시아에 치우쳐 통일될까 걱정되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한반도가 미·일에 치우쳐 통일되어 20세기 전반기와 같이 ‘만주’지방이 위협받을까 하는 우려의 대비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전체가 대륙세력권에 치우쳐 통일될 수 없는 경우 북한지역만이라도 그 영향권 안에 둘 필요가 절실하며, 그것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만주’와 북한지역에 걸쳐있었던 고구려를 중국사 안에 넣어 우선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제3의 위치’ 확보 급선무-

중국의 인터넷사이트에 “북한을 도와주지 말고 붕괴시켜 북한지역을 중국의 자치구로 만들자.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북조선의 전신인 고구려·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었고 중국 땅이 아니었느냐” 하는 글들이 올라온다고 한다. ‘동북공정’의 속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만하게 한다.

한반도는 베트남이나 독일과 달라서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안 되었고 그래서 6·15 공동선언 후 ‘협상통일’이 추진되고 있다. 전쟁이나 흡수가 아닌 협상의 방법으로는 미국·일본에 치우치는 통일도, 중국·러시아에 치우치는 통일도 불가능하다. 두 세력 사이에서 제3의 위치를 확보하는 통일이 요구되며, 그래야만 고구려 빼앗기도 진정될 수 있다.

지금 한반도 남북 7천만 주민들의 민족적 역량은 일본에 지배되던 때나 분단되던 때와는 크게 다르다. 특히 젊은 세대는 남북공조로 대륙세력에도, 해양세력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위치를 확보하며 통일할 만한 역량을 갖추어가고 있다. 기성세대와 달리 그럴 만한 민족관 및 역사관도 수립해 가고 있다.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희망이 여기에 있다.

<강만길/상지대 총장>

(경향신문 200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