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교과서도 "고구려사는 한국사"

중국의 초.중등 교과서와 대외 공식 문서에서는 아직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 범주가 아닌 고대 한반도의 정권, 나아가 세계사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정치적 목적의 역사왜곡이라는 또 하나의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중국 현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만들어져 2003년에 두번째로 인쇄한 인민교육출판사 간행 중국 중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수(隋)와 당(唐)왕조 연간에 한반도와 빈번한 교류가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각주 부분에 "당시 한반도에는 고구려와 백제.신라 등 3개 국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출판사가 2003년에 인쇄한 중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인 '세계역사'에서는 "기원 전후 시기에 한반도 북부에 고구려 정권이 있었으나 후에 신라에 의해 통일됐다"고 명시함으로써 고구려사를 중국사가 아닌 세계사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책은 또 "이후 수백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각축하는 3국 정립(鼎立)의 형세가 지속됐으며 서기 676년에 이르러 신라에 의해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이 통일됐다"고 한국 고대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중국 내 정식 세계사 교과서에서 고구려를 다룸으로써 최근 중국 측이 보인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 즉 '동북공정'의 의도와 정면 배치되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대학 교재도 마찬가지다. 베이징(北京)대학 간행 역사교과서인 '중국 고대 간사(簡史)'에서도 "수와 당대에 걸쳐 한반도에는 고구려.백제.신라 3국이 존재했으며 이 가운데 고구려는 반도 북부와 함께 요동을 점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구려가 과거 한반도와 관련된 정치적 존재임을 명확히 기술한 것이다.

이밖에도 중국 외교부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국가 개황(槪況)'대목의 한국 역사 부분에 "기원후 1세기 무렵에 한반도에는 신라와 고구려.백제 등 3개의 국가가 존재했다"며 "7세기 무렵 신라가 한반도에 통일 정권을 수립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외교부의 이러한 홈페이지 설명 대목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할 수 있어 그 의미가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베이징대학의 중국 고대사 연구센터의 왕샤오푸(王小甫)교수는 지난해 8월 출간한 '성당(盛唐)시대와 동북아 정국'이라는 저작에서 "고구려는 끊임없이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 과감한 공격성을 보였던 동북의 한 정권"이라며 "과거 중국 학계는 중원 왕조의 움직임 등에 과도한 신경을 씀으로써 이 부분들에 대한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王교수의 이 같은 인식은 고구려사의 객관적인 역사 활동에 주목하면서도 고구려를 중국사의 범주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중국 학계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20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