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연구' 시민단체가?

4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구려사 연구재단’(가칭) 설립추진위원회 총회에서 시민단체 대표들과 한국 고대사학자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추진위원으로 초대된 한 시민단체 대표는 “고구려사 연구를 학자들에게만 맡겨 두면 파벌 중심의 연구에 치우치기 쉬우며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검증이 이뤄지기 힘들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연구재단에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나이 지긋한 한 교수는 이렇게 응수했다.

“파벌 운운하는 것은 학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연구재단 설립을 앞두고 길바닥에 내던져진 고기를 놓고 싸우듯 하지는 말자.”

연구재단의 명칭을 놓고도 갑론을박했다. 학계 인사들은 “연구가 주 기능이 돼야 하므로 ‘연구원’이 맞다”고 했고 시민단체 대표는 “연구만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어 내고 역사교육도 해야 하므로 ‘연구재단’이 좋겠다”고 맞섰다.

‘고구려사 연구재단’ 발족 예정일은 3월 1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학계와 시민단체는 재단의 연구 영역과 역할을 둘러싸고 아직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해답은 왜 고구려사 연구기관을 만들기로 했는가를 떠올리면 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고구려사 연구를 뒷받침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학자가 연구 자료를 구하기 위해 사재(私財)를 털어 중국 쓰촨(四川)성의 시골 도서관을 찾고 평양에서 고구려사 관련 자료를 구해 들어오다가 공항에서 빼앗긴 뒤 관계 기관에까지 불려가야 했던 국내 연구 여건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송기중 서울대 교수(국문학)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시절의 소중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연구원 연간 예산이 80억원인데 대부분 경상비에 들어가고 정작 연구비는 3억∼4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재단도 이렇게 운영될 우려가 있다.”

정부가 고구려사 연구기관에 지원할 연간 100억원의 예산은 당초 목적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 그리고 고구려사 연구기관의 핵심 역할은 한국고대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20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