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학자, "고구려는 조선민족의 주권국가"

북한의 한 역사학자가 역사적 사실 등을 들어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주권국가였다면서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왜곡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강세권 연구사(연구원)는 5일 인터넷 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에 게재한 `조선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고구려'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고구려의 역사는 조선민족의 강대성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며 그 근거로 △건국단계 △황제국으로서 대국의 지위 △대외관계 자주권 고수 등 세 부문으로 나눠 설명했다.

강 연구사는 고구려가 성립 초기부터 독자성을 견지한 주권국가로 역사무대에 등장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고구려는 B.C 277년에 부여출신인 고주몽(동명왕)에 의해 우리 나라 고대 국가의 하나였던 구려국의 판도에서 우리 나라 역사상 첫 봉건국가로서 건국되었다" 며 고구려가 건국 초기에 대국이었다는 사실은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고조선, 고구려를 비롯해 중국을 위협하던 여러 나라 종족들의 진출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은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강 연구사는 또 고구려는 시종일관 천자국, 황제국의 지위를 차지했던 대국이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즉 시조 동명왕이 `천제의 아들(천자)'로 자칭한 사실을 거론, "고구려의 최고 통치자는 그 어떤 다른 나라 `황제'에게 종속된 `후왕'이 아니라 여러 제후들을 거느린 황제였다"며 "최고통치자가 이러할진대 그가 대표하는 국가가 다른 나라의 부용국이나 일개 지방정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구려 임금의 황제적 지위는 연호의 사용을 통해서도 입증된다며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세운 광개토왕릉비와 중원고구려 비에 보이는 `영락', `건흥'을 비롯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금석문들에서 고구려의 연호를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구려가 대외관계에서 자주권을 확고히 고수한 국가였음을 지적했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대 국가들과 주동적인 외교무역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에게 가해지는 외세의 간섭과 압력을 과감히 물리치고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영예롭게 지켜냈다며 중국의 `구당서'(고구려전)에 당고조가 고구려와 전쟁을 피하고 화목을 도모하려 했다는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역사책에 나오는 `조공', `책봉' 등의 용어와 관련, "이것이 마치도 그 무슨 주종관계의 표현이기나 한 것처럼 여기는 견해들도 있지만 대국주의적 및 사대주의적 입장에서 쓰여진 문구를 가지고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역사주의적 입 장을 벗어난 아전인수격의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강 연구사는 "역사적 사실은 고구려가 그 어느 대국의 `소수민족정권'이나 `지방정권', `속국'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였다는 것을 웅변으로 실증해 주고 있다"고 못박았다.

(연합뉴스 2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