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사를 새로 쓰자

“십 수년간 고구려 연구만 해 온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4일 가칭 ‘고구려연구재단’ 설립 추진 총회가 열린 자리에서 필자가 새로 만드는 재단은 ‘고구려사연구재단’ 보다는 범위를 넓혀 ‘동북아고대사연구소’로 하자고 주장하자 한 고고학자가 던진 질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발언할 기회는 없었지만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고구려사 연구를 10년 해 보니 고구려사 연구만 가지고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자가 동북아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두 가지 확실한 이유 때문이다.

첫째,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2002년 2월부터 2007년까지 5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프로젝트이다. 앞으로 3년밖에 지속하지 않을 동북공정을 상대로 거국적인 재단을 설립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한시적 프로젝트에 대한 방어적 연구센터건립이 아니라 중국이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중화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적극적인 연구센터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00억이나 200억 원 정도의 소규모 재단으로는 뒤쫓아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국민적 대응이라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장기적이고 거국적인 역사연구센터를 발족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만의 중앙연구원이나 중국의 사회과학원과 맞먹는 연구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둘째, 중국이 우리 역사를 철저히 분해하여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방어만 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우리도 중국과 주변 역사를 우리 눈으로 다시 쓰지 않으면 중국의 팽창주의와 중화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고대사는 물론 한족사(중국사), 몽골, 시베리아,중앙아시아를 포함한 북방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모두 참여하는 대단위연구센터여야 한다.

현재 중국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는 중국사를 완전히 새롭게 쓰는데 어려움이 없다.

우선 칭기즈칸은 중국 사람인가? 중국은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 몽골 칭기즈칸이 세운 원나라가 중국의 25사(史)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몽골이 원나라는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서면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런 왕조가 몽골의 원나라만이 아니다. 선비족이 지배한 북위,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는 모두 중국의 한족이 지배한 나라가 아니고 거꾸로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한 역사이다. 거란족이나 여진족, 만주족은 모두 고구려가 지배했던 영토의 후예들이다. 그 역사를 다시 쓸 자격과 능력을 갖춘 민족은 우리 뿐이다. 우리가 우리 눈으로 중국사를, 더 나아가 아시아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논리에서 이다.

중국은 주변 민족을 통치하려 한 만큼 주변 민족의 통치를 받았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교훈을 중국에 알려 줄 수 있는 수준 높고 순수 학술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 14개 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 팽창적 중화주의에서 상생의 국제주의로 변해야만 아시아에 평화가 올 수 있다. 우리의 연구는 이런 큰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규모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단 이름을 ‘동북아 고대사 연구재단(센터)’로 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울러 여기에는 ‘고구려연구소’, ‘발해연구소’, ‘고조선ㆍ부여연구소’, ‘한족(중국)연구소’, ‘북방연구소’ 같은 전문 연구소를 두어 종합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장ㆍ서경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일보 2004-2-5)